전세사기특별법 국회 통과했지만 거부권 예상…대구대책위 “답답함 넘어 이젠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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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본회의 직후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유감을 표하며 재의요구권(거부권) 건의 계획을 밝혔고, 29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대구에서는 지난 1일 전세사기 희생자가 나왔지만 여전히 시 차원의 대책 마련이 요원한 상황이다.

28일 오후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재석 의원 170명 중 찬성 170표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선구제 후회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전세사기 피해자의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매수해 보증금을 먼저 돌려주고, 이후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돌려받는 방안이다. 채권은 공정한 가치 평가를 통해 매입하되, 최저 매입 가격은 최우선변제금을 기준으로 한다. 이때 필요한 재원은 주택도시기금으로 활용하며, 채권 매입 과정 등 주요 절차를 HUG에서 맡는다.

반면 정부는 이 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청약자들이 조성한 기금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는 게 맞지 않고, 채권 매입에만 3~4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에 채권 평가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없고 채권 매입 업무를 맡는 HUG의 부담이 크다고도 주장해 왔다.

▲지난 1일 대구 전세사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전세사기 피해자가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구 남구 대명동의 피해자 집 앞에 놓인 국화와 추모 문구.

본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27일,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지원 강화 방안’을 내놨다. 개정안의 선구제 후회수보다 후퇴한 내용이 담겼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피해 주택을 경매에서 정상 매입가보다 낮은 낙찰가로 매입한 후 차액으로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차액은 피해자가 공공임대주택 거주 시 보증금으로 인정해 부담을 낮춰주고, 계속 거주하지 않는다면 경매차익에서 월세 지원액을 제외한 보증금을 반환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야당 주도의 개정안과 다른 내용의 대안을 제시한 만큼 대통령이 21대 국회 임기 마지막날인 29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거부권을 행사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회가 이날 안에 재표결을 하지 않으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정부안에 대해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피해자 상당수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통해 피해주택에서 빨리 퇴거하고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해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이런 점에서 특별법 개정안은 LH가 매입해 줄 테니 피해주택에서 계속 살라고 하는 정부 대책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며 “표결 전날 이렇게 일방적으로 대책을 발표하는 정부에 매우 유감이며, 특별법 개정을 반대하기 위한 술수로밖에 안 보인다”고 비판했다.

정태운 대구 전세사기대책위원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전국에서 1만 7,000명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됐는데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게 현재로썬 자명하다. 지금 피해자 단체카카오톡대화방이 난리다. 이전까진 답답하다는 얘기가 주였다면 이젠 분노이다. 탄핵 방법까지 물어본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우린 싸울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중구, 달서구 등 대구에서도 계속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연락이 대책위로 오고 있다”며 “며칠전 처음으로 대구시와 간담회를 했지만 아무것도 약속된 건 없다. 대책위에서 타 지자체의 지원 내용을 브리핑했고, 대구 상황에 맞게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대구시는 검토하겠다고만 했다”고 전했다.

28일 정의당 대구시당는 성명을 내고 “작년 5월 법 제정 이후 6개월마다 보완입법하기로 한 약속이 1년이 다 되어서, 여덟 번째 희생자를 떠나보내고 지켜졌다. 너무 늦었지만, 21대 국회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이라는 민생법안으로 마무리하게 된 것은 다행”이라며 “이제 공은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보인 태도와 어제 국토부가 사실상 거부권을 염두에 둔 지원책 발표로 피해자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일분일초라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구조요청에 즉각 응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