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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또는 지역 콘텐츠가 ‘핫플레이스’로 조명되면 별안간 ‘돈쭐’나는 시대다. 사람이 몰리며 본래의 공간은 관광객의 소비를 위한 공간, ‘일탈’의 공간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본래 거주하던 지역민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바뀐다.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는 익히 알려진 바 있다. 일각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없이 어떻게 지역 발전을 도모하느냐며, ‘성장통’으로 치부하는 모습도 있다고 한다. 모종린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로컬생태계구축위원장은 지역 소멸 대응을 위해 로컬 크리에이터를 지원하는 창조 경제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고도 설파한다. 그런데 지역을 핫플레이스로 조명해 관광객을 불러오는 데 성공하면, 지역민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든 지역 소멸의 대안으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을까?
26일 오후 2시 복합문화백화점 무영당에서 ‘힙한 로컬이 지방소멸의 대안인가’ 세미나가 열렸다. 지역 예술가·연구자·활동가가 모인 세미나에서는 지역 상권을 개발하는 방식은 부동산 가격 폭등, 지역민 삶의 양식을 고려하지 않은 상업적 개발이 오히려 지역 주민을 떠나가게 하고 결과적으로 고유성이 있는 지역을 ‘도장 깨기’ 방식으로 낙후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미나에선 정용택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발제에 나섰다. ‘로컬 젠트리파이어 전성시대-핫플 과잉이 앞당기는 지방소멸’ 저자인 정 감독은 연남동, 성수동, 황리단길 등 핫플레이스로 조명된 지역의 상업화, 임대료 상승, 공실률 증가와 관련한 현황을 설명했다.
정 감독은 “지역의 장소성을 무시하고 돈이 되는 힙한 것들만 추구한 결과 로컬은 주민이 살 수 없는 관광지가 돼 인구소멸 지역이 되고 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정 감독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촉발된 지역을 활성화됐다고 평가할지 여부도 누구의 관점으로 볼 것인가에 달렸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로컬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지역 발전을 위해 젠트리피케이션이 필요하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성장통이라고도 한다. 중요한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이 누구에게 좋은 것인지다”며 “상수동, 연남동 등기부를 분석한 기사에는 상가 건물주 중 외지인 비율이 늘고 있다. 흥한 지역의 과실은 외지인 건물주와 투기자본이 누리고 저소득층 원주민일수록 더 낙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정 감독은 로컬 콘텐츠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가 부동산 ‘임장'(매물 지역을 탐방하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 투어를 기획하는 현실이라며, 이 점에서도 로컬 사업을 되짚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서울 중심의 관점을 가진 이들이 내세우는 힙한 로컬이 아니라, 지역의 로컬리티를 제대로 살린 사업을 해야 한다”며 “지역을 대상화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로컬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감독 발제 이후 김현정 지속가능지역연구소 소장, 안진나 도시야생보호구역 HOOLA 디렉터, 이만수 레인메이커 대표, 장지혁 시민활동가가 토론에 나섰다. 이들은 로컬 정책이 지역민 삶의 양식을 고려하는 것은 물론, 지역민이 중심이 돼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 소장은 “로컬은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삶터인데, 소위 로컬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개념 놀이나 실험의 장으로 삼아버리는 듯하다”며 “힙한 로컬이 성공인양 하지만, 정주하는 주민이 줄고, 골목상권의 용도와 기능이 뒤바뀌는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주민이 떠나고 상권 활성화 성과도 지속되지 못한다면 왜 핫플이 되어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구 소멸 위기를 겪는 지역 대안으로 로컬 정책이 들어선 것도 아니다. 누군가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에너지를 투여한 곳에 자본이 들어와 과실을 따는 것에 더 가깝다”며 “로컬에 살면서 콘텐츠를 생산할 주체는 줄고, 그 지역도 결국 소멸을 향해 간다. 지역소멸을 오히려 부추기는 정책은 현재 지역에 사는 주민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진나 훌라 디렉터는 로컬의 고유한 특성과, 터에 기반한 커뮤니티를 복원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훌라는 대구 북성로를 기반으로 지역 공구골목 기술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로컬’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안 디렉터는 “외부자의 시각과 내부자의 각성이 만들어내는 재발견의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로컬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다. 하지만 장소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똑같은 콘텐츠, 상품을 찍어내는 것”이라며 “훌라가 북성로에 온 다음 주민들과 라포를 형성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이곳은 일률적이지도 않고 유통, 수리, 제작, 적재하시는 분도 있어 일률적이지 않아, 찍어내기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지역의 내구성, 면역력을 고려하면서 터와 무늬를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만수 레인메이커 대표는 김광석길, 교동, 동성로, 북성로, 수창동을 거쳐 다시 북성로에 터를 잡고 ‘로컬 브랜딩’ 사업을 시도한 경험과 그 과정에서 겪은 로컬 정책의 난맥과 괴리감에 대해 설명했다.
이 대표는 “여러 사업들을 통해서 대구스러움을 만들려고 했다. ‘대화의장’을 꾸리고 시도할 때는 대화가 북성로, 대구에 왜 더 필요한지에 대해 성찰하고 로컬리티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힙하다는 것도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 진정성을 보고 소비하는 소비자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며 “하고 싶은 것이 로컬브랜드이지, 로컬브랜드를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다. 로컬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로컬 아이덴티티를 담으려 노력한다기보다,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상품이 되는 것이 로컬브랜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지혁 활동가는 ‘로컬’이 아닌, 진정으로 지역을 살리는 길에 대해 토론했다. 장 활동가는 지역소멸 대응을 위한 지역 정치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자본의 세계화뿐 아니라 노동 또한 세계화하는 현실에서 역설적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민주주의 교육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통해 국제적 연대를 도모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장 활동가는 “지역소멸 현상,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정책이란 것도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오히려 지역소멸을 가속화하는 듯하다. 발터벤야민이 이야기했듯, 엑셀을 밟을 게 아니라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시점이다. 이 시점에서 역설적으로 지역의 정치가 필요하다. 어떻게 지역 정치에 개입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또한 이주노동이 세계화하는 시점에서 역으로 이주노동자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아시아 지역에 민주주의를 확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지역과 세계가 연결되는 국제적 연대를 지역사회에서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