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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홍준표 대구시장과 대구시의 대구퀴어축제 방해 책임을 인정했다. 지난해 퀴어축제 당시 홍준표 시장과 대구시의 행정대집행이 퀴어축제를 방해했다는 의미로, 행정대집행의 불법성이 인정된 셈이다.
24일 오후 1시 55분 대구지방법원 제21민사단독(재판장 안민영)은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홍 시장과 대구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을 인용해 7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조직위가 홍 시장이 SNS를 통해 명예훼손성 발언을 했다며 홍 시장 개인에게 청구한 소송은 기각했다. 소송 비용도 원고(조직위)가 4분의 3을, 피고가 나머지를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집회의 자유와 일정한 장소와의 관련성은 집회에 필요한 물건의 사용에 의하여도 발생한다. 이러한 물건에 의한 특정 장소의 점용은 집회의 자유 실현에 수반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보호돼야 한다”며 “집회에 설치된 부스 및 무대는 설치 필요성이 안정된다.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 안녕질서에 위험을 초래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행정대집행 사유가 없음에도 대구시 소속 공무원이 집회 개최를 저지했으므로 대구시는 국가배상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고, 피고 홍준표는 중과실이 인정되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덧붙였다.
조직위는 판결 이후 법원 앞에서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민의 기본권을 확인하면서 성소수자도 한국 헌법의 적용을 받는 같은 시민임을 선언하는 판결”이라며 “집회는 광장과 도로 등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서 수행할 수 있고, 제한에 엄격해야 하며 사전 허가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판결은 향후 퀴어 축제 개최나 관련한 형사 사건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퀴어 축제 관련 도로 점유 문제는 해소될 전망이다. 대구시는 이번 재판에서 통상적 집회가 아닌 상당 시간 도로에 특정 시설물을 설치하고 점유한 행사이면서도 도로관리청의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아 위법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행정대집행에 대한 판결이 나온 만큼, 대구시 입장에서도 올해 열릴 퀴어 축제에서 같은 방식으로 저지에 나서는 데에는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도로 점용 허가를 얻지 않았다는 이유 외에 다른 문제를 지적하며 다시 방해에 나설지, 행사 개최를 위한 버스 우회 조치에 협조할 지는 알 수 없다.
또한 홍 시장에 대한 조직위 측의 집회방해죄 고소 사건 등에서도 홍 시장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조직위에 따르면 손해배상소송이 민사재판이라 수사와 별개지만, 집회 방해 행위를 통한 손해가 인정된 만큼 집회방해죄 입증에도 반영될 수 있다는 것 이다. 다만 집회방해죄 성립에는 고의성이 입증돼야 하는 점은 변수다.
배진교 조직위원장은 “퀴어축제는 성소수자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시민과 만나고 동료 시민으로서 교류하기 위한 것”이라며 “홍 시장의 집회 방해 행위에 대해서도 끝까지 책임을 물어 다시는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퀴어축제는 어떤 탄압에도 꺾이지 않고 올해에도 시민들과 퍼레이드로 만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대구퀴어축제는 하반기 중 열릴 예정이다.
조직위를 대리한 장서연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는 “행정대집행은 엄격한 요건 하에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한다. 대구시 행정대집행은 비상식적이었다. 대규모 강제집행에 대한 계획이나 근거 문건도 없이 구두로 시행했다. 비상식적”이라며 “대구퀴어축제뿐만 아닌 윤석열 정부 들어서 집회의 자유가 축소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집회의 자유에 대한 중요성을 확인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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