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 위해 여성농민 정치적 주체로 서야”

칠레 전국농촌원주민여성연합 전 부회장 발표
‘균형과 참살이(Buen vivir)를 좇는 마푸체 여성들’
‘기후변화에 대한 여성농민들의 인식과 적응 전략’
여성농민들, 기후재난 일상화·삶의 위기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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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여성학연구소가 주최한 ‘전환의 시대 : 지역 여성의 글로벌 연대 모색’ 학술대회 이틀 차인 24일, 첫 번째 세션은 ‘기후위기 시대 여성농민의 삶과 연대 모색’을 주제로 열렸다. 오전 일정은 칠레 마푸체 부족 여성들의 삶과 투쟁 과정을 살펴보고 기후변화에 대한 한국 여성농민의 인식과 적응 전략을 짚는 순서로 진행됐다.

칠레 전국농촌원주민여성연합 전 부회장 발표
‘균형과 참살이(Buen vivir)를 좇는 마푸체 여성들’

발표자로 나선 밀라라이 페이네말 모랄레스 ANAMURI(칠레 전국농촌원주민여성연합) 전 부회장은 칠레 원주민인 마푸체 부족 여성농민의 상황과 투쟁 과정에 대해 전했다. 발표 주제는 ‘균형과 참살이(Buen vivir)를 좇는 마푸체 여성들’이다. Buen vivir란 안데스 지역 원주민들의 세계관을 말하며, 나와 내 주변이 함께 잘 살 때 비로소 구현되는 ‘잘 사는 삶’을 말한다. 원주민 운동이 신자유주의 운동에 저항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해 온 개념이기도 하다.

▲칠레에서 온 밀라라이 ANAMURI 전 부회장은 칠레 원주민인 마푸체 부족 여성농민의 삶에 대해 전했다.

밀라라이 전 부회장은 “199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에선 신자유주의 정책의 시행, 천연 자원의 민영화에 대항하는 원주민 운동, 환경‧여성단체 등 새로운 사회적 행위자가 등장했다. 칠레 정부는 원주민법을 제정했지만 영토 회복 요구에 답을 주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마푸체 여성조직이 등장했다. 이들은 ANAMURI와 같은 농민여성 네트워크나 초국가적 네트워크와 연대해 활동한다”고 설명했다.

여성농민의 권리 강화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하며 “여성들은 정체성, 문화,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내적강화 과정에 있다. 이를 위해선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참살이를 좇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다른 사회 부문과 동맹은 필수적”이라며 “원주민 운동은 사회·도시·여성문제와 떨어져 있지 않다. 특히 연구기관과 함께 한다면 원주민의 지식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푸체 여성의 경험, 현대 에코페미니즘 인식론과 밀접”

토론에 나선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마푸체 여성의 경험을 통해 한국 페미니즘 운동과 농민 여성운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며 “마푸체 여성들의 저항 방식은 다중의 억압 상태인 여성들이 어떻게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토착 씨앗을 보존하고 원주민 법체계, 여성 간 연대체 등을 유지하며 저항의 자원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현대 에코페미니즘이 주장해 온 인식론과 매우 밀접한 관련 있다”며 “에코페미니즘도 ‘바로, 여기’에서의 정치를 강조함으로써 경제 기술환상주의가 유도하는 허구적인 미래를 쫓기보다 커뮤니티 기반의 접근법, 즉각적인 행동주의, 각 문화권과 특정 종족에 존재해 온 생태주의 역사를 유지하고 복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오전 진행된 첫 번째 세션의 발표자 및 토론자로는 밀라라이(ANAMURI), 김현미(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정숙정(계명대 여성학연구소), 김정열(비아캄페시나)이 참여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여성농민들의 인식과 적응 전략’
여성농민들, 기후재난 일상화·삶의 위기로 인식

이어 정숙정 계명대 여성학연구소 연구교수가 ‘기후변화에 대한 여성농민들의 인식과 적응 전략’에 대한 발표를 진행했다. 정 교수는 “농식품 체계 전환은 생물다양성 손실을 막고 회복으로 전환하기 위해 농민 앞에 놓인 과제이다. 특히 여성농민에게 기후위기 적응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여성농민은 중요한 해결 주체의 위치에 있다”며 “지역 단위에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적응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해외의 연구결과가 많지만, 국내에는 거의 없다”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정 교수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여성농민의 인식과 적응 전략을 분석했다. 여기에 따르면 여성농민들은 기후재난이 일상회되고 삶의 위기로 다가왔다고 인식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제도인 농작물 재해보험은 손실 보장에 턱없이 부족하고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정부가 유도하는 기후변화 대응정책도 여성농민의 실천방향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농민은 적응 전략으로서 아르바이트 등 겸업을 고려하고 선택하는 지점도 나타난다.

여성농민의 건강권 침해 문제도 있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뿐 아니라 밭작업 시 병해충에 노출되는 사례도 있다. 실제 농업인안전보험 청구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쯔쯔가무시증이 발생한 농업인 중 여성은 10만 명 당 158.7명으로 남성 89.4명보다 많이 발생했다. 해녀들이 고수온으로 인해 최근 대발생하는 독성 해파리에 노출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정 교수가 분석의 주요 대상으로 정한 전여농은 소농 중심의 농생태학과 지역시장의 재지역화를 통한 대안먹거리 체계로의 이행을 전환의 방향으로 설정했다. 이 체계의 전환 과정에서 여성농민의 생태적 농업은 생물다양성을 회복함과 동시에 농지를 탄소 흡수원으로 활용함으로써 기후위기를 완화한다는 분석이다.

정 교수는 결론에서 “정부 주도의 기후위기 적응 담론과 농생태학을 실천하는 여성농민이 직면한 현실 사이에 극명한 불일치가 나타난다. 여성농민은 주거, 의료 등 삶의 질을 보장받아야 하고 탄소 감축과 기후 적응 정책의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시혜나 책무가 아닌, 여성농민의 권리로 접근되어야 할 문제”라고 정리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정열 비아캄페시나(국제소농운동조직) 동남동아시아 대표는 “여성농민의 삶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스마트팜을 통해 기후위기 해결을 말하고 있다. 대량의 비료와 농약, 기계에 의존하는 산업적 생산 방식 대신 내부 순환 자원을 통해 농사짓는 농생태적 방식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다는 건 과학적 사실”이라며 “비아캄페시나의 농생태학은 농업 생산방식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변화를 목표로 한다. 사회 구조의 변화 없이 진정한 농생태학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계명대 여성학연구소의 2024 KIWS 국제학술대회 ‘전환의 시대 : 지역 여성의 글로벌 연대 모색’은 23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다. 이 대회는 계명대 여성학연구소가 주관하고 한국여성학회, 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계명대 여성학연구소가 주최했다.

24일 학술대회 세미나는 ▲기후위기 시대 여성농민의 삶과 연대 모색 ▲돌봄위기와 중국의 돌봄사회로의 전환 모색 ▲삶의 전환: 한국에서 여성주의 커먼즈의 모색을 주제로 오후 5시까지 진행된다. 25일 지역사회 현장탐방 일정으론 ‘언니네텃밭’ 상주봉강공동체,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을 방문할 예정이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