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시인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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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신경림 시인, 5월 22일 별세(향년 90세)

빈소 :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 2024년 5월 25일(토) 오전 5시 30분
장지 : 충주시 노은면 선영

지난 22일 오전 8시 17분, 국립암센터에서 신경림 시인이 별세했다. 향년 90세. 장례는 대한민국 문인장으로 치러지고 장례위원장은 국회의원 도종환 시인이 맡았다.

▲2017년 5월 17일 수성구립용학도서관(관장 김상진)에서 열린 신경림 시인 토크콘서트 ‘농무와 80년대 문학’ 가운데 신경림 시인 (사진=정용태 기자)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충주고와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56년 <문학예술>에서 ‘갈대’, ‘묘비’ 등으로 등단했다. 1973년 첫 시집 <농무>(창작과비평사)를 시작으로 <가난한 사랑 노래>(1988, 실천문학사), <목계장터>(1999, 찾을모)를 비롯한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1998년 나온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우리교육)는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 도서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첫 시집 <농무>는 발간 이듬해 제1회 만해문학상을 받았고, 한국문학작가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시카다상, 만해대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회장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의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동국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시인의 부고가 알려지면서, 대구·경북 지역 문인과 독자들도 페이스북 등에 고인을 추모하는 글과 함께 시인의 시편을 공유하며 애도를 표하고 있다.

전 영남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정지창 문학평론가는 “신경림 시인, 하면 보통 ‘농무’(1971)와 ‘파장’(1970)을 비롯한 초기 시편을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1970년대의 유신시대에 쓴 ‘목계장터’(1976)와 ‘4월 19일, 시골에 와서’(1977)를 좋아했다”며 “낙타 타고 떠나신 신경림 선생님”을 추모하며 ‘낙타’(2008)를 노래했다.

경북 포항의 이종암 시인은 “신경림 시인은 돌아가는 길(귀로)을 ‘약장수처럼 한바탕 너스레를 떨다가 철지난 유행가 가락도 섞어서’ 그렇게 웃으며 노래하면서 가려고 한다. 이는 ‘저물면 주섬주섬 주워담아 넣고 돌아오는 버스 안’과 같은 우리네 삶이 그래도 ‘세상은 즐겁고 서러워 살 만하다’고 삶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큰 긍정의 자세에서 기인한다. 원한 맺힌 것 없이 웃으며 노래하며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일이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이다. 그러한 발걸음을 얻으려면 지금 여기의 삶이 아름다워야 한다”며 시 ‘귀로(歸路)에’를 공유했다.

“간이며 쓸개를 꺼내 꿈도 꺼내고 추억도 꺼내 먼지와 소음으로 뒤범벅이 된 술집과 거리에 늘어놓고는

지나가는 사람들 다 불러모아 약장수처럼 한바탕 너스레를 떨다가 철 지난 유행가 가락도 섞어서

저물면 주섬주섬 주워담아 넣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새빨간 저녁노을

세상은 즐겁고 서러워 살 만하다고, 그것이 지금 노을이 내게 들려주는 말이리”
_ 시집 <낙타> 중 ‘귀로(歸路)에’ 전문

김헌주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길에 핀 들꽃 사진과 함께 “곧 재개발이 되어 사라질 동네 무너진 담벼락에 돋아난 귀한 생명이다. 이 생명을 보면서 작고하신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시가 생각났다. 신경림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선생님 그동안 선생님의 사람냄새나는 많은 시로 참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내내 고마워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라며 ‘가난한 사랑 노래’를 올렸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_시집 <가난한 사랑 노래> 중 ‘가난한 사랑 노래_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전문

신중현 도서출판 학이사 대표는 시인의 ‘겨울밤’을 인용하며 “사실 ‘농무’보다 이 시를 더 좋아한다. 백락청 선생이 발문에서 ‘그의 시행들은 산문으로 고쳐 놓았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고 하신 말씀에 가장 공감하는 시다. 시인의 명복을 빌며 시집 <농무>를 꺼내 다시 읽는다. 시집 정가 2,000원을 보니 가격 자체가 이미 우리에겐 시로 남았다”고 추모했다.

▲2017년 5월 17일 수성구립용학도서관(관장 김상진)에서 열린 신경림 시인 토크콘서트 ‘농무와 80년대 문학’ 가운데 사회자 김용락 시인과 신경림 시인(사진=정용태 기자)
▲2017년 5월 17일 수성구립용학도서관(관장 김상진)에서 열린 신경림 시인 토크콘서트 ‘농무와 80년대 문학'(사진=정용태 기자)
▲2017년 5월 17일 수성구립용학도서관(관장 김상진)에서 열린 신경림 시인 토크콘서트 ‘농무와 80년대 문학’ (사진=정용태 기자)

정용태 기자
joydrive@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