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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서울과 대구/경북이 여성 자기결정권 지지 가장 높아
임신중단이 좋은 일 아니라는 인식도 가장 강한 대구/경북
‘23주 이하’ 조건에 가장 많이 몰리는 경향
여아 낙태 횡행 과거사 극복? ‘성별 이유 임신중단’ 반대율 전국 최고
적극 지원과 신중한 접근, 둘 다 가장 강조한 지역
결론은 지지와 예방 투-트랙? 청소년 피임교육에 진심인 TK
한국리서치가 5월 22일 임신중단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3월 8일부터 1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천명을 상대로 한 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url 발송)였고, 가중치 부여 방식은 셀가중, 응답율은 요청 대비 15.9%,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였다(자세한 내용은 한국리서치 홈페이지 참조).
한국사회는 임신 7주 이하의 배아도 생명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고, 그러면서도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더 지지한다는 응답이 과반으로 나타났다. 임신중단 허용 요건에 대해서는 2/3 가량이 ’특정한 경우‘에 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기존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하는 사유들에 대해서는 절대 다수가 임신 23주 이내에서 허용하거나 주수와 상관없이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현행 법에서 보장된 것이 아닌 사회경제적 사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허용 불가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한편 임신중단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급여 적용과 경구용 (먹는) 낙태약의 국내 도입에 대한 찬성은 과반이었다. 그러면서도 개인적 신념 등을 이유로 의료인이 임신중단 관련 진료를 거부할 권리에 대해서는 동의율이 우세했다.
한국리서치 측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이후 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응답자 3명 중 1명이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을 지적하며, 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번 한국리서치 조사는 낙태 허용 요건에 대한 여론 다수의 생각을 확인함으로써 입법 논의에 크게 기여했다.
태아 생명권 중시하면서도 임신 여성을 택한 사람들 많아
태아보다 임신 여성이 우선: 전국 54%, 대구/경북 61%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 전국 58%, 대구/경북 67%
그렇다면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대구/경북 사회의 성향은 어떠할까. 조사대상 사례수(명/가중값 적용 기준) 1000중 대구/경북은 98이었다. 각 지역 사례수는 서울 186, 인천/경기 320, 대전/세종/충청 106, 광주/전라 98, 부산/울산/경남 149, 강원/제주 43이었다.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 중 우선시하는 가치로 전자를 고른 전국 응답자는 35%였고 후자는 54%였다. 과반이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한 것이다. 대구/경북은 33% 대 61%로 나타나 26% 대 62%가 나온 서울 다음으로 임신 여성 자기결정권을 지지하는 지역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태아의 생명권을 가장 우선시한 지역은 강원/제주(45 대 44)였다.
’임신중단의 법적 허용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일‘이라는 진술에 대해서는 전국적으로 긍정이 81%, 부정이 13%로 나타났다. 태아의 생명권을 우선시하는 응답자 중에도 65%가 긍정을 표했다. 대구/경북은 긍정 81%, 부정 17%로 전국 결과와 별 차이가 없었다. ’임신 중단은 여성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라는 진술에 대해서는 전국에서 긍정 76% 대 부정 16%였고, 대구/경북도 그와 똑같은 수치를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임신중단의 법적 허용은 우리 사회가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에 대해 지역의 긍정 여론은 높았다. 전국은 긍정 47%, 부정 46%로 팽팽했고 대구/경북은 55% 대 41%였다. 또한 ’임신 중단이 합법이라 하더라도,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라는 진술에 대해선 전국이 긍정 58%, 부정 35%였고, 대구/경북은 67% 대 35%였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 차원에서는 임신중단 허용을 바람직하게 보면서도 임신중단이 태아 생명권에 대한 위협이거나 나아가 부도덕하다고 보는 여론이 있고, 대구/경북은 그와 같은 경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 대구/경북 등에서 강한 임신 중단 지지 여론은 태아의 생명권을 가벼이 여긴 것이 아니라 고심 끝에 임신 여성을 우선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대구/경북, ‘23주 이하’ 등 조건부 허용론자 가장 많은 지역
초기에는 여성 자기 결정권, 시간 지날수록 태아 생명권
임신 7주 이하의 배아부터 생명체로 볼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국 54%, 대구/경북 54%였다. 임신중단 허용 범위에 대해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함‘은 전국 20%, 대구/경북 13%였다. ’특정한 경우에 한해서만 허용함‘은 전국 66%, 대구/경북 72%였다.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하지 않음‘은 전국이나 대구경북이나 똑같이 10%에 불과했다.
대구/경북은 태아에 대한 인식과 낙태 반대율에서 전국 결과와 차이가 없었다. 다만 전국에서 무조건 허용론에 비해 조건 허용론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일부 결과는 다음과 같다.
모체의 생명이 위협받을 경우 임신중단 허용
임신 23주 이후에도 허용: 전국 36%, 대구/경북 31%
임신 23주까지만 허용: 전국 46%, 대구/경북 52%
모체의 신체 건강이 위협받을 때 임신중단 허용
23주 이후에도: 전국 32%, 대구/경북 18%
23주까지만: 전국 53%, 대구/경북 65%
생명이나 신체 건강이 위협받는 경우에도 23주 이후의 임신중단에 부정적인 것은 여성에게 가혹한 측면이 있고 ‘여성 자기결정권 지지’와 충돌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모순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태아의 생명쪽에 더 무게를 두는 성향을 내비친 것이다.
태아가 기형 또는 유전질환을 가진 경우, 강간 또는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에서도 대구경북은 ’23주까지만 허용‘ 대비 ‘23주 이후에도 허용’ 응답이 낮은 편이었다.
사회경제적 사유 허용: 자녀 계획<경제 사정, 파트너와의 결별<미성년자 임신
1990년 성감별 여아낙태 횡행하던 대구경북,
현재 태아 성별에서 기인한 임신중단에 가장 부정적인 지역
대구/경북은 전국과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 사유의 임신중단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사회경제적 사유 중 응답자들의 반대가 가장 높았던 것은 자녀 계획(터울 조정 등)에 어긋난 임신의 경우였는데, 허용 불가‘는 전국 43%, 대구/경북 48%였고, ’23주까지만‘은 전국 42%, 대구/경북 44%, ’23주 이후에도‘는 전국 8%, 대구/경북 1%였다.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의 임신중단에 대해서는 좀 더 너그러웠다. 전국적으로 ‘허용 불가’는 31%였다. 대신 ‘23주 이후에도 허용’ 역시 12%에 그쳤고, 절반에 가까운 46%가 ‘23주까지만’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대구/경북은 전국과 비슷한 33%가 ‘허용 불가’였고, ‘23주 이후에도’ 6%, ‘23주까지만’이 52%였다.
파트너와 결별하게 된 경우의 임신중단에 대해서는 전국적으로 ‘허용 불가’ 29%, ‘23주까지만’ 42%, ‘23주 이후에도’ 16%였고, 대구/경북은 각각 33%, 45%, 10%였다. 미성년자 임신의 경우 임신중단에 대해서는 전국적으로 ‘허용 불가’는 16%, ‘23주까지만’은 51%, ‘23주 이후에도’는 22%였다. 대구/경북은 각각 17%, 51%, 22%로 전국 응답과 거의 같았다.
태아의 성별이 부모가 원하는 성별이 아닌 경우에 대해서는 전국 응답자의 71%가 임신중단 ‘허용 불가’라고 밝혔다. 대구/경북은 ‘허용 불가’가 78%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23주까지만 허용’은 전국과 대구/경북이 19%로 같았지만 ‘23주 이후에도 허용’은 전국 4%, 대구/경북 0%였다.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태아 성감별에 따른 임신 중단에 가장 부정적인 지역은 대구/경북이다. 사례수와 오차범위를 감안하면 해석에 신중할 필요가 있겠지만 단순 수치상으로는 그렇다.
격세지감이다. 1990년 신생아 성비는 116.5일 정도로 남초 현상이 짙었고 셋째아의 경우는 189.3이었다. 당시 대구광역시의 셋째아 성비는 무려 392.2였고 경북도 294.4나 되었다. 당시 남아 선호/여아 배제 그리고 이로 인한 임신중단이 가장 극심한 지역이었다는 방증이다. 그랬던 지역이 성별 문제로 인한 임신중단에 가장 부정적으로 변한 것은 과거사 반성과 성평등 인식의 확산 때문일 수 있다.
의보 적용, 먹는 피임약, 지정 진료, 숙려제, 진료거부권 등
적극 지원과 신중 접근 모두에서 가장 높은 동의율 나타낸 TK
청소년 피임교육 의무화 동의율: 전국 87%, 대구/경북 96%
이번 조사에서는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설문도 포함되었다. 임신중단에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동의율은 53%, 비동의율은 40%였고, 대구/경북은 61% 대 34%로 찬성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경구용 (먹는) 낙태약 법적 허용에 대해선 전국 응답이 찬성 57%, 반대 28%로 나타난 가운데 대구/경북은 64% 대 25%로 역시 찬성율이 가장 높았다.
임신중단에 대한 지원 정책에 가장 적극적인 대구/경북은 다른 한편으로는 신중함과 현실주의를 내비치기도 했다. 임신중단 진료 가능한 의료기관을 두고 전국적으로는 ‘모든 병원에서’가 32%, ‘지정된 병원에서만’이 58%였는데, 대구/경북은 전자가 27%, 후자가 67%로 지정 병원 진료 의견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 지역이었다.
의료진과의 상담 및 진료 후 임신중단을 하기까지 24~72시간 숙려하는 제도를 의무화하는 것에 대해선 전국은 동의율 82%, 비동의율 11%였고 대구/경북은 90% 대 7%였다. 강원/제주를 제외한 지역 중 숙려제 의무화를 가장 찬성하는 지역이었다. 또 의료인이 개인적 신념 등을 이유로 진료를 거부할 권리에 대해, 전국적으로는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59%이고 비동의율은 33%였는데, 대구/경북은 66% 대 29%로 진료 거부권에 가장 긍정적인 지역임이 드러났다.
의료인 진료거부권 문제는 앞으로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될 공산이 높다. 의료인들 사이에 임신중단에 대한 반대나 규제를 지지해온 단체가 있었고 이들은 합법화 이후에도 진료거부권을 강력히 주장할 공산이 크다. 반면 임신중단 권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시민의 일부는 진료거부에 대해 “의료인으로서 다해야 할 인도적 책임과 직업 윤리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성토해왔다.
이번 조사에서 다수 시민은 진료거부권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는 한국사회가 어지간하면 개개인의 신념을 존중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다만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가 늘어날수록 임신 여성의 의료접근성이 침해되고 현장 갈등이 커진다는 이치도 염두에 둬야 한다. 진료거부권에 관한 고민과 논쟁은 또다른 주제로도 파생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현재 사형 집행이 이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예컨대 교도관이 양심이나 신념을 이유로 사형 집행 입회를 거부한다면, 이는 존중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징계 사유인가.
이번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대구/경북은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가장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지역에 속한다. 이는 성별에 기인한 임신중단에 가장 부정적인 경향과 맞물려 여성 존중 의식이 뚜렷해진 지역임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임신 중단은 좋지 않은 일’이라는 인식 역시 가장 강한 지역이었다. 지역민의 이런 양가적인 생각은 임신 중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시공간적 조건을 부여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쪽으로 정책관이 형성되도록 만들었다.
“임신중단은 좋지 않은 일이지만 하게 될 경우는 존중하고 도와야 한다.” 이런 대구/경북의 인식은 “애초 임신중단할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청소년 대상 피임교육 의무화에 대해선 전국 동의율이 87%고 비동의율은 8%였는데, 대구/경북은 96% 대 3%로 전국에서 가장 청소년 피임교육에 ‘진심’이었다.
김수민 객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