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 꿈, 초년생 희망까지 모두 앗은 ‘조 씨 일가’ 전세사기

희생자 나오고서야 움직인 지자체
피해자 “합의고 나발이고 임대인 빨리 벌받았으면‘
22일 임대인 조 씨 구속영장 발부
'감옥', '지옥'이 되어버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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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입니다. 임대인 조 씨가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 참고인 조사차 방문 바랍니다” 그날은 신혼여행 3일 째 되는 날이었다. 3월 14일 김나라 씨(가명, 29) 부부는 경찰 전화를 받고 전세사기 피해자가 된 걸 알았다.

부부는 지난해 7월 이 집에 입주했다. 지난 1일 숨진 희생자와 같은 건물은 아니다. 나라 씨의 집은 그곳으로부터 약 1.3km 떨어져 있다. 나라 씨는 직장 근처인 이곳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고, 열심히 돈을 모아서 아파트로 이사가는 걸 꿈꿔왔다.

전세보증금은 1억 4,000만 원, 1억 1,000만 원이 대출이다. 입주 8개월 차에 결혼식을 올린 이들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피해자 단체 대화방에 들어가 상황을 확인했다. 손 쓸 도리 없이 3월 말 곧바로 건물의 경매개시 결정이 났다. 임대인 조 씨 소유인 인근 빌라 임차인 두 명이 건물에 가압류를 걸었다.

“5월 14일에 국토교통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을 받았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요.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도 선순위인 은행, 가압류권자가 먼저 떼 갈 거래요. 저희보다 선순위인 임차인도 돈을 못 받을 확률이 높은 상황입니다. 세 번째로 걸린 저는 경매가 유찰되면 아예 가망이 없죠. 개인회생을 하려고요.”

▲박성아 씨(가명, 왼쪽)와 나라 씨 부부(가명 ,오른쪽)가 조 씨에게 받은 문자. 조 씨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관리비 독촉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사진=피해자들 제공)

조 씨는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 뒤에도 세입자들에게 관리비를 독촉했다. 나라 씨 부부가 내는 월 관리비는 30만 원. 여기엔 수도·전기·인터넷 요금, 엘리베이터 이용료 등이 포함된다. 3월 말 경매개시 결정 소식을 듣고부터 내지 않았더니 임대인은 4월 8일 곧바로 독촉 문자를 보냈다. 이어서 11일에는 ‘관리비가 연체돼 정지된다’고 추가로 문자를 보내 압박했다. 관리비 압박은 실제로 단전, 단수 뿐 아니라 인터넷 선 단절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1일 숨진 희생자 역시 관리비 압박을 받고, 숨지는 당일엔 인터넷 선이 끊어지기도 한 걸로 전해진다.

남편 현재 씨(가명, 29세)는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에도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제가 18살부터 일을 했거든요. 실업계 고등학교 나와서 공장도 다니고 판매직도 오래 했는데, 결국 정치권 말뿐이지 실제 도움을 받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걸 알아요. 개정안에 선구제 후회수 안이 포함됐어도 결국 조건이 맞아야 30% 돌려받겠더라고요. ‘80% 선구제를 해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 정도면 기대 하겠는데, 그런 거 아니면 어차피 신경 안 써요.”

나라 씨 부부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는 악성 임대인 조 씨는 남구 대명동을 중심으로 건설임대업을 하고 있다. 갭투자 방식으로 다가구 주택을 짓고, 선순위 보증금을 허위 고지하는 방법으로 임대를 놓았다. 부동산 시장 여건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임대인들을 ‘조씨 일가’라고 부른다. 조 씨 뿐 아니라 그 가족과 동업인 등이 함께 14채 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전세사기대책위원회가 파악한 바로는 14채 중 11채가 대명동에 집중되어 있다. 이외에도 남구 봉덕동과 달서구 송현동, 상인동에도 각 1채씩 파악된다. 대책위는 해당 건물들의 피해 임차인이 최소 150명, 피해금액은 170억 원에 달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 1일 조 씨 소유로 된 대명동 소재 건물에서 임차인이 극단적 선택을 하자, 남구(구청장 조재구)는 전세피해지원상담소를 한시적으로 운영하면서 실태 파악에 나선 상태인데, 남구가 파악한 조 씨 일가 소유 건물 현황은 대책위 집계와는 차이가 있다.

현재까지 남구가 파악한 조 씨 일가 소유 건물은 13채인데, 모두 남구 소재다. 피해 세대는 90세대고, 이들 건물에 설정된 근저당권의 합은 115억 원이다. 대책위가 파악한 남구 소재 피해 건물이 12채인걸 고려하면, 남구가 1채 더 피해 건물을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다. 조 씨가 법인을 만들어 업을 이어왔기 때문에 피해 건물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나오고서야 움직인 지자체
피해자 “합의고 나발이고 임대인 빨리 벌받았으면‘

임현아(가명, 28세) 씨는 1일 숨진 대구 전세사기 피해자가 살았던 호실 아래층에 살고 있다. 강원도에 살던 현아 씨는 2022년 6월 대구의 마케팅 회사에 입사하면서 보증금 1억 2,000만 원으로 이 집을 구했다. 계약 만료 시점을 4개월 가량 앞둔 지난 2월 말 대구전세사기대책위가 집집마다 붙인 피해건물 알림 전단지를 보고서 집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건물에 사는 임차인들과 반상회를 열고, 같은 임대인을 둔 피해자들과도 모였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지인에게 물어보고, 변호사 사무실도 찾아다녔어요. 대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법무법인에도 갔거든요. 카카오톡으로 상담할 땐 계약을 하자고 하더니, 방문해서 임대차 계약서를 보여주니 ‘임대인의 동업인을 변호하고 있어서 맡아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모든 게 무의미해졌달까요. 현타가 왔어요. 이미 임대인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현아 씨는 매일 타임라인을 기록했다. 언젠가 다 끝나고 웃으면서 돌아볼 날이 올 거란 희망을 갖기 위해서였다. 기록을 시작한 2월 27일부터 지금까지 매일 기록할 만한 일이 생겼다. ‘임대인에게 계약중도중지 문자 보낼까 고민하다가 포기’, ‘반차 쓰고 피해자 신청하고 옴’, ‘신문고 민원. 홍카콜라에 전세사기 댓글달기’, ‘다음 세입자 구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 되는지 친구에게 물어봄-사기죄 공조, 방조범 성립될 수 있다 함’, ‘법무사 자문 후기. 아무 도움 안 됨. 내 상황을 모름’,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치료 시작. 약 꾸준히 먹어야 된다 함’.

▲1일 대구 전세사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전세사기 피해자가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피해자 집 앞에 놓인 국화와 추모 문구.

희망을 갖기 위해 시작한 기록은 점점 고통이 됐다. 그만둘까 싶던 차에 단체 대화방 알림이 울렸다. 대책위에서 함께 활동하던 위층 임차인의 사망 소식이었다. 현아 씨는 타임라인에 ‘3××호 남편분이 아줌마 자살하셨다고 알려주심’이라고 적었다. 그날 이후 현아 씨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합의하더라도 보증금을 돌려받는 게 우선이다 싶던 마음이 ‘합의고 나발이고 임대인이 빨리 구속돼 처벌받았으면 좋겠다’는 분노가 됐다.

“4월 초에 보증금 반환 소송을 걸었거든요. 소송이 진행되자 임대인한테 전화가 왔어요. 계약 만료가 6월인데 벌써 소송을 걸면 어떡하냐며 화를 내더라고요. ‘보증금 돌려줄 수 있냐?’ 되물었죠. ‘이미 소송을 걸었는데 어떻게 하겠냐. 그냥 계속 해라. 난 보증금 안 돌려줄 거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못’이 아니라 ‘안’이라고요. 그날 통화 이후에는 제 번호를 차단했는지 연결이 안 돼요.”

22일 임대인 조 씨 구속영장 발부
‘감옥’, ‘지옥’이 되어버린 집

현아 씨에게 집은 더 이상 편히 쉴 수 있는 곳,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탈출할 수 없고 사람들 시선도 안 좋은 감옥이 됐어요. 직장 사람들은 항상 짠하게 쳐다봐요. 인사말이 ‘오늘은 좀 어때? 잘 해결되고 있어?’예요. 일상의 모든 대화가 다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게 거지 같아요.”

조 씨 일가가 보유한 건물의 다른 임차인들에게도 집은 지옥이다. 현아 씨의 집으로부터 1km 떨어진 곳에 있는 박성아(가명, 30) 씨는 집을 보기 싫어서 지난달 임차권 등기 설정 후 월셋집으로 이사했다. “더 이상 부동산도, 집주인도, 등기부등본도 못 믿겠어요. 예전에는 집에서 ‘열심히 모아서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야지, 안정적으로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마음이 쪼들리고, 대출이자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집이 편하지 않아요.”

교대역 인근에 자리한 주택에 거주하는 강하나(가명, 28) 씨 에게도 집은 더 이상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지난주에 부모님과 동성로에서 열린 여덟 번째 희생자 추모제에 갔어요. 분향소를 지나가는 시민들이 웃고 떠들고 춤을 추는 데 마음이 좀 그렇더라고요. 사는 데 중요한 무언가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느낌이라, 가끔 마음이 힘들어요.” 하나 씨는 인터뷰 내내 ‘마음이 좀 그렇다’는 말을 반복했다. 상실감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조 씨 동업인 소유의 건물에 살고 있는 박보영(가명, 37) 씨는 “2019년 부동산에서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할 때 조 씨가 분명 함께 있었어요.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해서 연장을 하다가 결국 고소까지 하게 됐죠. 그 사이 단수가 되고 인터넷이 끊겼어요. 아파트 청약도 어쩔 도리가 없어서 포기했고요. 경찰에선 조 씨가 아닌 가족, 동업인의 구속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하는데 피해자들 입장에선 공범의 책임이 적다고 보는 것 같아 답답해요”라고 전했다.

22일 오후 전세사기 대책위원회 단체 대화방에 알림 하나가 올라왔다. ‘중간 통지, 대구남부경찰서입니다. 귀하의 전세사기 관련 피의 사건은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돌아가야 할 집은 피해자들에게 여전히 지옥이다. <뉴스민>은 입장을 듣기 위해 조 씨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