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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 검은 실루엣으로 된 영정 3개가 놓였다. 충북 청주에서 나란히 누워 사망한 채 발견된 발달장애인 일가족을 기리기 위해서다. 국가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장애인 가족이 피부양자를 살해하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는 일이 반복되자, 전국적으로도 장애인 가족들이 추모에 나섰다.
21일 오전 11시 동인동 대구시청 앞에서 발달장애인 가정의 사회적 참사 추모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가 주최했다.
이들은 발달장애인 가족에 대한 정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보도를 통해 집계한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는 전국 매월 1건 수준으로, 2022년 10건, 2023년 11건, 2024년 3건(청주시 사건 포함) 파악됐다.
최근 알려진 청주 일가족 사례의 경우, 아버지 사망 이후 빈곤하게 살던 장애인 일가족 3명이 지난 7일 숨진 채 발견됐다. 60대 어머니와 40대 자매 모두 중증 지적장애인으로, 올해 들어 이들의 건강이 악화되며 비관적인 상황에 놓였다고 알려졌다.
사회적 지원과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이들이 나서서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파악한다. 유사한 사건이 전국적으로 반복되는 만큼 청주시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 장애인 가정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10월 대구에서도 평생 지적장애인 아들을 돌본 아버지가 특별한 직업이 없는 상황에서 독박 간병,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아들을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은 현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관련 기사=검찰, 대구 장애인 독박 간병 살인 사건 징역 5년 구형(‘24.5.3.))
부모 등 부양자가 고령화될수록 돌봄의 압박이 커지고 비관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유순영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성인부문위원장은 “내년에 30세가 되는 발달장애인 아들이 있다. 아들 기분에 따라 제 기분도 왔다갔다 하며 살고 있다. 1+1 이다. 내가 나이가 더 들고 아프거나 죽게 되면 우리 아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그것이 문제”라며 “나이가 60을 넘기면서 체력도 옛날과 다른 거 같다”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정신적으로도 소진된 거 같다. 이 와중에 들리는 발달장애 가족 참사 소식은 바로 내 일로 들린다. 위태로운 줄타기처럼 버티다가 언젠가 떨어지는 순간이 올 거 같다”며 “대구에서 통합 돌봄이 새로 생긴다고 하던데, 기한이 정해져있고 대상자에도 선정돼야 한다. 제대로 된 지원체계 안에서 마음 놓고 걱정없이 아프고 걱정 없이 죽고싶다”고 말했다.
전은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구지부장은 “국가가 법을 만들고 예산을 통해 이 죽음을 막아야 하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고 있다”며 “이러한 사건이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개인의 잘못인가? 재판에서도 국가와 사회의 잘못이라는 것이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어이없이 죽어가지 않도록, 정책을 만들기 위해 만남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대구시와 대구시의회에 ▲발달장애인 지원기본계획 마련 ▲지원주택과 주거유지서비스 도입, 관련 조례 제정 ▲대구시 9개 구군 발달장애인 전문 지원을 위한 가족지원센터 설치 ▲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통한 발달장애인 집중 사례관리사업 실시 ▲사회적 고립 발달장애인 찾기 위한 전수조사 실시를 요구했다.
한편, 사망한 일가족 추모 행사는 대구 외에도 경북, 울산, 부산, 경남, 충북, 광주 등에서도 동시에 진행됐다. 경북도청 앞에서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북지부, 경상북도장애인부모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가정에 대한 사회적 지원 강화를 요구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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