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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은행이 창립 57년 만에 지방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전환됐다. 전국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된 대구은행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시중은행 전환 이후 기존 지방은행으로서 해 온 역할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두고 대구은행은 경쟁력을 강화해 이익 창출과 대구경북 재투자까지 이뤄내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16일 오후 금융위원회는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인가’ 안건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초부터 5대 주요 은행 체제 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TF팀을 꾸린 금융당국은 과점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카드를 꺼냈다. 지방은행 가운데 시중은행 전환 요건에 부합하는 건 대구은행이 유일한 만큼 사실상 타겟이 명확한 안이었다. 대구은행은 시중은행 전환으로 영업지역을 확대하고, 지방은행일 때 자본 조달이나 기업가치 평가에서 받던 불리함을 떨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대구은행은 금융위원회에 시중은행 전환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인가 절차를 밟아왔다. 도중에 증권계좌 불법 개설 이슈가 불거지면서 업무 일부 정지 및 과태료 20억 원의 제재를 받기도 했지만 3개월여 만에 최종 인가가 났다.
대구은행은 사명을 ‘IM뱅크’로 변경하고 도(道) 단위로 거점 점포를 신설할 계획이다. 지방은행이 없는 강원이나 충청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대형 시중은행이 집중하지 않는 중(中)신용등급의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를 중점에 두고 사업을 펼친다는 전략이다. 대구은행은 “지역사회의 관계 금융을 통해 영업한 노하우를 전국으로 확대한다면 자본 규모를 키울 수 있고, 이는 대구에서의 대출 규모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관계망에 기반해 성장한 대구은행
지역 구성원, ‘대구은행 이용=지역발전’ 인식
대구은행은 최소 자본금 1,000억 원, 지배구조상 산업자본 보유 한도 4%, 동일인 은행 보유 한도 10%, 대주주 위법 여부 등 지방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시중은행 전환에 필요한 법적 요건을 모두 갖췄다. 부산은행은 산업자본 보유 한도가 4%를 넘겨 시중은행 전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대구은행이 지방은행의 한계 속에서도 시중은행 전환이 가능한 정도로 재무적·구조적 안정성을 갖추게 된 배경에는 지역 구성원의 신뢰에 기반해 독점적 시장구조를 오래 유지해온 영향이 크다. 지역주민, 대학, 지자체, 기업 등 지역민과 관계에서 쌓은 신뢰가 시장 지배와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뜻이다.
대구은행이 중소기업 금융 노하우로 꼽는 ‘관계 금융’도 같은 맥락이다. 관계 금융은 신용도가 낮더라도 사업 전망이 양호한 중소법인과 개인사업자 등을 대상으로 신뢰 관계를 쌓아 거래를 이뤄나가는 방식이다.
2014년 나온 이재천(경희대 지리학과)의 석사 논문 ‘지방은행의 지역 착근성 연구-대구은행의 사례로’에 따르면, 대구 시민들은 대구은행 이용이 지역발전과 관련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대구은행은 이번 시중은행 전환 과정에서도 대구경북 지역에선 바뀐 상표와 함께 ‘DGB대구은행’ 상표를 병기하는 등 지역민을 고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구 달서구에서 피부미용업을 하는 임서영(65) 씨는 “20여 년 전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집 근처 대구은행에 가서 만든 사업용 계좌를 지금까지 쓰고 있다. 사실 마이너스통장이나 대출을 받을 때 대구은행의 혜택이 가장 좋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지점에 방문해 일을 처리하며 만족한 경험, 사업 이외 개인적으로도 옛날부터 이용해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부분 때문에 주거래 은행으로 사용한다”며 “사업을 한 아버지가 대구은행만 쓰신 모습을 보고 자란 영향도 있다. 시중은행으로 전환해도 별일 없으면 계속 쓸 것”이라고 전했다.
독점적 시장 지배는 지역대학과 연계를 통해서 강화됐다. 대구은행은 대구경북의 20여 개 대학의 학생증 발급 서비스를 운영해 왔는데, 실제 미래 고객 확보 차원에서 꽤 효과적이었다. 대학 학생증과 은행계좌 개설을 연계하는 형태로, 여기에 체크카드나 교통카드 등의 기능을 선택해 추가할 수 있다. 지역 대학을 상대로 독점적 영업을 해 왔다는 측면에서 앞서의 논문이 짚은 ‘대구은행 이용을 지역의 발전과 동일시 한 지역 구성원들의 협조가 반영된 서비스’로 볼 수 있다.
대구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김현건(32) 씨는 “20살에 만든 첫 통장이 대구은행이었다. 경북대학교에 입학해 학생증을 만들 때 대구은행 계좌를 연동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20대 내내 교통카드 겸용 주거래 은행으로 썼다”며 “이후 신한, 카카오뱅크 등 다른 은행의 계좌를 만들었지만 지금도 월급 수령 계좌로는 20살에 처음 만든 대구은행 것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경제 침체, 인터넷 은행 공세 등에 따른 변화 요구
몸집 키우는 대구은행에 지방은행 역할 동시에 요구해야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은 기업 입장에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지역민 입장에선 지역 금융 및 사회공헌 분야를 전방위적으로 맡아 온 지방은행의 기능이 약화될 수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강화된 만큼 지방은행의 역할이 중요한데, 시중은행으로 전환된 대구은행은 기존에 대구경북에서 해 온 역할을 지속할 명분도 여력도 줄어든 셈이다. 지방은행이 지역에서 갖는 기능을 고려하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지난해 KIF 분석보고서 ‘지방은행은 필요한가?: 지방은행의 역할, 필요성, 정책과제’에서 우리나라 지방은행들이 지역경제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왔음을 실증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지방은행은 지역 중소기업에 은행자금을 공급하고, 수도권에 비해 소득이 낮고 밀집도도 떨어지는 지역 금융소비자들에게 질 높은 은행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등 순기능을 갖는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적인 예로 시중은행은 전국의 차주를 대상으로 신용평가를 하고 대출 결정을 하기에 일관성 있는 대출기준을 갖는다. 따라서 시중은행은 지역별 특성을 일일이 고려하기 어렵지만, 지방은행은 그 지역 기업과 장기적으로 밀착된 관계를 갖고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비재무 정보를 수집하는 관계금융을 통해 지역의 중소기업에 대출을 내줄 수 있다. 시중은행이 점포를 내지 않는 지방 중소규모 도시에도 지방은행은 지역공헌 차원에서 점포를 유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대구은행의 성장에 기여한 지역민의 충성도, 지역경제의 호시절은 점차 옛날 이야기가 되고 있다. 지역 은행 선호도가 강하고 주거래 은행을 잘 변경하지 않던 과거에 비해, 현재는 지역 선호도가 낮아지고 다양한 은행을 동시에 이용하는 경향이 강화됐다. 최근 10년 사이 인터넷전문은행 등장과 모바일뱅킹 확대라는 금융업계 변화도 크다.
대구은행이 시중은행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에는 이런 배경의 영향도 있는 걸로 보인다. 대구은행은 영업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해 규모의 경제 달성과 조달비용 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지방은행은 기존 영업 기반 지역 이외 타지역(광역시·도 단위)에 1개를 초과하는 점포를 운영할 수 없지만, 시중은행은 전국 어디나 점포를 개설해 영업할 수 있고 자본금 규모가 커지면 그간 시중은행 대비 높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왔던 부담이 완화되는 효과도 있다.
지방은행이기에 요구된 대구은행의 지역 중심의 공익적 역할이 시중은행 전환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진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대구은행은 16일 시중은행 전환 인가 소식을 전하는 보도자료에서 “전국 단위 은행으로 고객에게 새롭게 각인되기 위해 사명은 ‘iM뱅크’로 변경할 예정이다. 단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iM뱅크와 함께 ‘대구은행’ 상표를 병기해 지난 57년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목표”라며 “축적한 금융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취약계층과 함께하고 다양한 디지털 혁신 서비스로 지역사회와 동반성장하는 새로운 시중은행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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