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2) 모르고 살아온 삶_박경화 이야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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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대구에는 장애성인을 위한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인정은 이뤄지고 있지만, 고등학교 인정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질라라비장애인야학 학생의 구술을 5월부터 8월까지 연재할 예정이다.]

[학교교육이 허락되지 않는 자들] (1) “이제 고등학교 가고 싶어요!”

55세의 박경화 씨는 중증의 뇌병변장애인이다. 2021년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 중학과정에 입학했고, 현재 졸업을 앞두고 있다. 장애가 중하다는 이유로, 이동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학교 문턱을 넘지 못한 서러움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50대에 야학을 처음 만나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 떠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경화 씨는 이제야 꿈이 생겼다. 이제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고등학교에 가서 더 많이 알아가고 싶은 소원이 생겼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의 법과 제도 안에서는 경화 씨가 고등학교에 갈 방법이 없다. 서럽고 억울하다는 경화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 글은 2024년 3월 12일부터 4월 22일까지 전 장애인지역공동체 권수진 활동가가 수차례 인터뷰한 내용이다.

4월의 어느 날, 샛노란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나를 환대했던 경화 씨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나 여기 너무 좋아요!!!”

그녀와 인사를 나눈 곳은 대구시 장애인 자립생활 주택(체험형) 아파트였다. 3주간 자립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입주 후 3번째 외출을 앞둔 그녀는 누군가 인터뷰를 하러 집을 방문한다니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나를 보자마자 아껴두었던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단체생활을 하는 그룹홈 시설에 사는 그녀는 자립주택에서 혼자 지낸 일주일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묻지 않았는데 ‘재밌다’, ‘좋았다’를 연발한다.

당신의 인생사를 듣기 위해 왔노라 설명하고, 기억나는 시절부터 현재까지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떻게 질라라비야학을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경화 씨는 머쓱한 표정으로 “나는 말 잘 못 해요, 내 말 못 알아들어요.”라고 말한다. 나는 다 알아들었다.

그녀는 중증의 뇌병변장애인이다. 언어장애도 있다. 선명하게 발음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집중과 경청을 통해 80%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해 ‘경화 씨가 답답한’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땐 손가락으로 직접 글씨를 적어 보인다. 소통은 충분히 이뤄졌다. 의사소통은 결국 두 사람의 노력으로 티키타카 하면 되는 것이므로.

▲활동가를 반갑게 맞이하는 경화 씨 [사진=권수진]
▲타이핑으로 단어를 알려주며 소통 중인 경화 씨 [사진=권수진]
‘학교’를 몰랐던 어린 시절

당신은 어떤 아이였나요? 나의 첫 질문에 그녀는 한참 생각하다 어렵게 말문을 연다.

“10살부터 생각이 나요. 나는 학교에 안 갔어요. 어릴 때부터 몸이 불편했고 걷지 못했어요. 1년에 두 번 명절에 큰 집 갔는데, 큰아버지가 업어줬어. 그거 기억나요. 큰집에 언니도 나를 업어주고 동네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것저것 보여줬는데, 너무 신났던 기억이 나요. 언니가 친절하게 알려주고 얘기해줬던 게 기억에 남아요. 학교?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아예 몰랐어요. 나중에 동생들이 국민학교 가는 거 보고 알았죠. 그래도 엄마가 이름은 쓸 줄 알아야 하니깐 ㄱ, ㄴ…하고 이름 세 글자 가르쳐줬어요.”

“내 고향이 거창인데, 시골이라 휠체어 그런 게 있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좀 커서 알았지만, 집 형편이 어려워서 살 수가 없었어요. 걷지도 못하고 몸도 불편하니깐, 당연히 학교 못 간다고 생각했죠. 그때는 엄마 아빠한테 서운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전동휠체어 타고 학교 다닐 수 있다는 거 알지만, 그땐 몰랐으니깐 괜찮아요. 그래도 어릴 때 아빠가 가끔 업어서 대문 밖으로 나가 동네 풍경을 보여줬어요. 그때 아빠 품이 참 따뜻했어…”

“동생이 3명인데, 남자 둘, 여자 하나. 우리는 4남매에요. 동생들은 학교에 가고, 나는 종일 집에서 방에만 있었죠. 하루는 엄마한테 나도 학교 가고 싶다고 말해봤는데, 엄마가 ‘안 돼’라고 말해서 조금 속상했어. 엄마도 속상할까 봐 더 얘기 안 했어요. 그런데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있었어요. 엄마가 한글 가르쳐줘도 이름만 알았지. 책은 못 읽었어요. 책을 읽고 싶었어요.”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철든 아이였던 걸까. 동생들의 등교를 보며 누구나 학교에 공부하러 간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학교에 가고 싶다고 더는 말할 수 없었다. 경화 씨는 경남 거창군 거창읍이 고향이다.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께 매일 학교에 데려다 달라고 할 수 없었고, 몸이 불편한 사람은 학교에 갈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단다. 학교에 가고 싶단 말을 더 이상 내뱉지 못하고 삼킨 채 27년을 방에만 있었다.

▲2021년 중학학력인정과정 입학식 [사진=질라라비장애인야학]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경화 씨 [사진=권수진]
장애인 12명이 사는 집

스물일곱. 여전히 집에만 있던 어느 날. 대구에 살던 이모가 집으로 찾아와 ‘경화를 대구의 그룹홈(소규모 거주시설)에 보내자’고 엄마에게 말하는 걸 들었다. 부모님은 집보다 그곳이 낫다고 얘기했고 그녀는 대구로 왔다.

“거기가 어떤 곳인지 아무도 나한테 설명도 안 해줬고, 갈지 말지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어른들이 다 정했죠. 집보다 낫다고 하니깐 그런가 보다 하고 갔어요. 첫날밤은 잊을 수가 없어요. 펑펑 울었어요. 매일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 공간이 낯설었어요. 집을 나온 게 27년 만이니깐. 엄마 아빠가 보고 싶고, 그립고, 나중엔 원망스러웠어요. 처음에 여기 왔을 땐 11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었어요, 나처럼 휠체어 타는 사람이 2명, 목발 사용하는 사람 1명, 발달장애인 8명 있었는데 그중 2명은 간질(뇌전증 장애) 발작이 심했었어요. 같이 방 쓰는 동생이 발작이 심해서 많이 놀랐었죠. 그래서 밤에 잠을 못 자기도 했고요. 불편한 것도 있었는데 좋은 것도 있었죠. 전동휠체어도 생겼고, 치과 치료도 받아서 이도 새로 했어요. 자원봉사자들 올 때 공부도 해서 초졸 검정고시도 응시해서 합격했어요. 그런 저를 지켜봐 준 그룹홈의 수녀님이 3년 전에 질라라비야학을 알려 주셨고, 드디어 학교라는 곳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야학에서 3년 동안 중학교 과정을 공부했고, 이제 8월 되면 졸업해요~~”

경화 씨의 55년 세월이 나에게도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듯하다. 거창 작은 시골 마을의 작은 방 한편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혼자였던 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그룹홈에서 28년째 살고 있다. 그곳을 만나 공부를 시작했고, 질라라비야학도 만났다. 그리고 자립생활 체험도 하게 되었다. 자꾸만 도전하고 싶단다.

55세, 드디어 혼자 살아보는 연습, 자립생활에 도전한다.

▲자립주택 담당자와 마트에서 찰칵 [사진=권수진]
(다음 주에 경화 씨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