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동상 공모전 (1) 5.16쿠데타

군복 입고 인증샷 vs. 장태완처럼 “반란군놈들!” 퍼포먼스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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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추앙하는 사람 중 박정희 동상이 없어서 불편을 겪거나 오해를 받는 사람은 없다.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 중 박정희 동상이 있어서 불편한 사람은 있다. ‘대구경북은 박정희그라드’ 같은 오해를 받을 때 존엄이 흔들리는 주민도 있다. 안 하면 다 같이 나쁠 게 없는데 굳이 누군가에게 나쁜 일을 하는가. 특히 동대구역이나 도심 공원 같은 곳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것은 반공익적이다.

본기자는 박정희 동상 건립을 저지하는 데 동참하고자 한다. 다만 투-트랙을 파겠다. 끝내 건립하고자 한다면 시민들 의견을 모으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박정희 동상 건립을 막는 것과 함께, ’비판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통합적 박정희 동상‘을 위한 아이디어를 낸다. 교토삼굴(狡兔三窟). 꾀 많은 토끼도 세 개의 굴을 하는데 두 개가 대수랴.

독자들의 아이디어도 받겠다. sumin-gumi@daum.net으로 동상 디자인이나 모티브가 되는 이미지, 그리고 간략한 설명문을 보내주시면, 심사해서 반영하겠다.

자, 첫 번째 시간이다.


“박정희 대통령 없었으면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할 수 없었다.” 박정희 추앙자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이에 따르면 5.16쿠데타는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정녕 한국 근대화가 총구에서 나왔다면 동대구역 박정희 동상은 5.16의 박정희여야 한다. 5.16은 박정희 인생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이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 아입니까? 

박정희는 군복을 벗고 민간인 신분으로 대통령이 됐지만 결코 초심을 잃지 않았다. 한일협정 반대투쟁이 한창이던 1964년에는 서울시 전역에 계엄령, 이듬해 한일기본조약이 맺어진 직후 반대 시위가 일어났을 때는 위수령, 1971년 대선 부정 규탄 대학가 시위 때도 위수령, 1972년 유신 헌법을 위한 비상조치 발표 때는 전국 계엄령, 1979년 10월 항쟁 때는 부산에 계엄령, 마산과 창원에 위수령. 병력 투입의 시즌이 7년 주기로 찾아왔다. 10.26만 없었으면 1986년에도 있었을지 모른다.

군복 입은 박정희 동상은 휴가 나온 군인이나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 사람들이 기념 촬영하기에 좋다. ‘인증샷 찍는 김에 소품을 좀 갖춰올까’ 하는 시민들로 동대구역 인근 안경점의 선글라스 매출이 늘어나는 지역경제 효과도 있다. 옆에 있는 군인들 동상도 같이 제작하면 더 좋다. 차지철은 5.16과 10.26을 모두 박정희와함께 했으니 수미상응이다. 대구(大邱)에서 대구(對句)를 이루다니.

박정희 비판자에게도 좋은 동상이다. 12.12 당시 장태완 수령사령관처럼 “야이 반란군들”하고 고함치는 퍼포먼스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군사 반란을 정면으로 미화했다’는 논란을 일으켜 조기 철거 가능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

김수민 객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