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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대구컨벤션뷰로 사무실은 적막한 가운데 분주했다. 앞선 통화가 끝나자마자 연이어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는 직원부터 동대구역에 손님을 마중하기 위해 짐을 챙기는 직원까지 업무가 바빠 보이는데도 이들을 둘러싼 공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3월 말, 대구시는 대구컨벤션뷰로 해산을 통보했고, 해산을 결정하는 총회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일터가 없어질 거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은 11명의 직원은 해산 반대,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는 대구컨벤션뷰로가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고용 승계 의무도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관련기사=지방재정법상으론 대구컨벤션뷰로도 공공기관인데···고용승계는 안된다?(‘24.04.23.))
대구컨벤션뷰로는 지난 21년간 대구시와 정부 등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서 대구시가 주최‧주관‧후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행사를 유치해 왔다. 오는 9일 총회에서 해산이 결정되면, 21년간 컨벤션뷰로가 쌓아온 역사와 성과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것은 그동안 이곳에서 일해온 이들이 만들어온 역사이자 성과이기도 하다. 고용승계 마저 이뤄지지 않으면 이들도 뷰로와 함께 사라진다.
대구의 국제회의 유치, A부터 Z까지 담당한 기관
선배에게서 후배로 이어진, ‘대구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
사실 ‘컨벤션’이라는 개념부터 일반인에겐 생소하다. 쉽게 말해 대구에서 진행하는 국제회의 및 행사(이하 국제회의)를 유치하고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모든 업무를 뜻한다. 행사 포스터 앞단에 이름이 적히거나 무대 위에 드러나는 기관은 아니지만 ‘대구시를 위해서 일한다’는 사명감을 선배가 후배에게 전달하며 20여 년 국제회의를 유치해 왔다.
권명희 컨벤션2팀장(50)은 기관이 설립된 2003년 입사했다. 당시엔 권 팀장과 대구시 파견 공무원, 엑스코 파견 직원 3명뿐이었다. 컨벤션의 개념이 지금보다 더 생소할 때다. 권 팀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입사해서 맨 땅에 헤딩을 했다. 대구가 전국 1호 컨벤션뷰로여서 물어볼 곳도 없었다. 당시 관광공사에 담당자가 한 명 있긴 했지만 뷰로 업무는 100인 100색이라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대구컨벤션을 만들어 왔다”고 설명했다.
2년 뒤 정희정 컨벤션1팀 팀장(49)이 입사했다. 호주에서 컨벤션 매니지먼트를 공부한 정 팀장은 계약 당시 당장은 처우가 좋지 않아도 빠르게 조직이 안정될 것이란 담당 공무원 말을 믿었다. 호주에서 컨벤션뷰로와 같은 조직이 도시 전체를 마케팅하며 탄탄하게 자리하고 있는 걸 봤기 때문에 국내 컨벤션 분야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2008년 입사한 이달리 전략사업팀 차장(39)도 비슷하다. 대학에선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하자마자 입사했다. 대기업 정규직과 대구컨벤션뷰로 계약직을 비슷한 시기에 붙어 고민도 했지만, 컨벤션 업계의 성장 가능성과 공공 영역에서 일하고 싶어서 컨벤션뷰로를 선택했다.
국제회의 유치 걸림돌 많은 대구···2, 3배 더 노력해야
국내에선 보수적 정치색+특색 없다 부정적 이미지
해외에선 낮은 인지도부터가 걸림돌
대구는 서울, 제주, 부산과 비교해 국제회의 유치에 유리한 도시는 아니다. 유치 전에서 투표권을 가진 한국인에겐 보수적인 정치색이 주는 선입견이나, 특색 없다는 도시의 부정적 이미지가 걸림돌이 되고, 외국인에겐 낮은 인지도가 1차적인 걸림돌이다. 가만히 있어도 섭외 요청이 있는 서울, 제주, 부산과 달리 대구에선 가만히 앉아 있어선 컨벤션 실적이 날 수 없는 조건이란 의미다.
국제회의 유치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이미 한국으로 유치가 확정된 국제회의를 대구로 가져오는 것과 유치국도 정해지지 않은 국제회의를 해외 도시들과 경쟁해 한국으로 유치하는 것으로 나뉜다. 후자는 유치하는 데만 수년이 걸리고 노력이 많이 들기 때문에 올림픽 유치 과정과 같다고, 직원들은 설명한다.
이들은 국제회의가 대구에 적합한 규모인지, 대구에 필요한 분야의 회의인지 등을 분석해 회의를 선별하고 유치를 제안한다. 운이 좋으면 처음부터 주최 측과 파트너가 되어 함께 유치를 준비할 수 있지만 대부분 국내도시 간 경쟁 과정을 한 번 더 거친다. 국내도시로 선정되면 해외 쟁쟁한 도시들과 본선이 기다린다. 경쟁 도시를 분석하고 영문제안서, 유치발표자료, 홍보영상, 대구시장 지지영상 등을 준비해 개최지가 결정되는 현장에서 마케팅 활동을 한다.
정 팀장은 “제안서의 사진 한 장도 수십 장씩 바꿔가며 고민하고 준비한다.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결정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감동 포인트를 다양하게 생각해서 준비한다. 필요에 따라 직접 찾아가거나 해당 국가 업무시간에 맞춰 밤늦게까지 기다렸다가 전화로 읍소한다”고 덧붙였다.
80개국 투표권자들에게 밤새 전화 돌리고,
관광 보조로 나서서 한복 입기 도우미하기도
“업무 범위 정해져 있지 않아, 일벌레만 모여”
의학 분야 유치‧개최 지원이 담당 업무인 정 팀장에겐 2014년 열린 아태조직공학재생의학회 유치가 보람 있는 기억 중 하나다. 2012년 어렵게 대구로 유치한 회의인데, 유치 확정 후 한 달 뒤 유치 경쟁 대상이었던 일본 교토대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유치 확정이 조금만 늦어졌어도 개최지는 일본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정 팀장은 “행사는 대구에서 역대 최대 규모로 잘 치러졌고, 그때를 계기로 관련 분야인 세계생체재료학회도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올 5월 개최 예정”이라며 모든 회의는 개별적이면서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2019년 열린 세계뇌신경과학총회도 후보가 너무 많아 유치 과정이 힘들었던 회의다. 총 10개국이 경합 했는데, 유치 당시 이 분야 한국의 인지도가 높지 않아서 휴일 없이 몇 달간 새벽이 되어야 퇴근할 정도로 열심히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80개국 이상, 투표권이 있는 100여 명을 설득하기 위해 한 명 한 명 이메일이나 전화, 방문까지 하며 유치활동을 했다. 정 팀장은 “힘들었던 행사일수록 그 과정이 더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덧붙였다.
이달리 차장은 2028년 개최 예정인 아시아태평양악리학회 유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대한약리학회가 국제행사 유치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대구시가 역제안을 한 사례다. 큰 범주론 의료 행사이니,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중심으로 대구에서 개최하면 강점이 있을 것이라 어필했다. 전 세계 약리학 분야에선 대표적인 행사인 만큼 지역 입장에선 특히 기업, 연구자, 교수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행사 규모가 클수록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대구에 온 전 세계 학자 등 참가자들은 참가비뿐 아니라 관광, 숙박, 쇼핑에 지갑을 열고 간다. 좋은 경험을 한 경우에는 가족들과 이후 관광으로 다시 방문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확한 업무 범위가 어떻게 되냐”고 묻자 정 팀장은 살짝 웃었다. 유치가 결정된다고 해서 이들의 업무가 끝나는 건 아니다. 참가자를 늘리기 위한 홍보 활동도 때론 이들의 몫이다. 행사 운영업체가 별도로 있어 진행을 관할하더라도, 지역과 행사의 접점을 만들어 내는 건 컨벤션뷰로의 업무다. 지역 경제의 파급효과를 위해 기관 및 기업과 연계 활동, 해외 참가자를 위한 교통안내, 관광, 연회장소 제안, 문화체험 준비까지 모두 이들의 몫이다.
정 팀장은 “유치가 결정되면 우린 어떻게 하면 지역에 파급효과를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호텔, 컨벤션, 대학 등이 포함된 회원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유”라며 “실제 행사 기간에 문제가 생겨도 중간다리 역할은 우리 몫이다. 관광 보조로 나서서 한복 입는 걸 돕기도 했다. 이렇듯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일벌레만 모여 있다. 사명감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시정 기조에 따라 국제회의 기획해 내기도
국제적 트랜드 따라 한 발 앞서 가기도 하지만,
갑작스런 대구시 해산 결정에 망연자실
대구콘텐츠뷰로의 국제회의 유치는 대구시정 기조와 함께 간다. 전략사업팀 대표 행사인 ‘아태안티에이징컨퍼런스’는 올해 7회차가 열릴 예정이다. 대구의 중점 산업 분야 중 하나가 헬스케어인 만큼, 의료산업을 육성하는 차원에서 뷰로가 7년 전 기획했다. 대구가 선도적인 치과, 모발이식과 함께 피부과, 성형외과 전공을 포함해 안티에이징을 키워드로 잡았다. 이 차장은 “기업도 학계도 이 컨퍼런스를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고 자부했다.
다른 도시보다 발 빠르게 국제회의를 유치해 와야 하는 과제 속에서 컨벤션뷰로 직원들은 트렌드를 미리 읽기도 한다. 공학 분야 유치‧개최지원 담당인 권명희 팀장은 “7~8년 전 AI 분야가 유망해서 관련 회의를 유치하려 해도, 받아주는 대구시 부서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관련 부서가 생기고 예산도 많아지니 재작년쯤부터 관련 행사 지원이 늘었다”고 기억했다.
대구컨벤션뷰로 홈페이지 기관 소개에 따르면 컨벤션뷰로는 2022년 기준 국제회의 유치 723건, 개최 지원 715건의 성과를 냈다. 2013년 설립 이후 연간으론 유치 약 72건, 개최지원 71건 해낸 셈이다. 대구시는 이들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지난 3월말, 해산을 통보했다. 그 과정에선 시의회를 거쳐야 하는 절차가 무시됐고 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도 없었다.
“3월 22일 사무실로 찾아온 대구시 측에서 4월 중 해산 총회를 열겠다고 통보했다. 우리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으나, 우리를 배제한 이사회 소집 통지가 회원사들에 떨어졌다. 사무국인 우리를 건너뛴 이사회 소집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회원사들이 문제제기를 해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후 5월 9일로 총회가 미뤄졌다. 아마 대구시가 회원사들을 설득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 한 게 아닐까 추측한다” 권 팀장이 말했다.
직원들은 대구시가 내 건 해산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시는 21년간 대구시와 발맞춰 국제회의를 유치해 온 컨벤션뷰로 해산을 결정하면서 “정책상의 이유”라고 일축했다. 직원들은 실적이 미진하거나 운영 상의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해산을 급박하게 결정해버린 대구시 결정이 이해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인수인계할 시간도, 대상도 없는데 해산 총회는 일주일 앞으
대구시 차원 국제회의 육성은 공적 역할···”사기업에 맡기는 게 맞냐” 지적도
급박한 결정에 때문에 여러 우려가 제기된다. 우선 대구컨벤션뷰로의 업무를 이어갈 기관이 엑스코라는 점도 걱정거리다. 얼마 전 열린 이사회에선 “국제회의를 유치하고 지원하는 기관을 엑스코 같은 사기업이 운영하는 사례는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구시 차원에서 국제회의를 육성하고 발전시키는 건 공공적 역할인데, 그것을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에 맡기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다.
이 문제를 지적한 이는 “엑스코는 영리조직이기 때문에 국제회의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엑스코를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다. 우린 엑스코뿐 아니라 호텔, 대학 등 회의에 적합한 장소를 선정해 왔다. 엑스코가 수익을 남기려 한다면 지역 컨벤션 업체들에도 피해가 갈 것”이라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뷰로의 직원들이 해온 업무를 인수인계할 시간도 없이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가는 것도 걱정이다. 결국 A부터 Z까지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엑스코로 업무가 이관된다 해도 업무에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차장은 당장 올해 9월 예정된 아태안티에이징컨퍼런스가 걱정이다. 행사를 앞단에서 준비해 온 건 뷰로다.
이 차장은 “자료야 정리해서 넘기면 되지만, 회원사나 해외 파트너 등 20여 년 쌓아온 인적네트워크는 연락처를 준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나”라며 “국비, 시비, 민자가 같이 들어가는 행사인 만큼 국비 심사도 중요하다. 5월 10일까지 K-컨벤션 지원 공모사업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우린 9일 해산이 예정돼 있다. 이런 세세한 부분들까지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터를 잡고 짧게는 6년, 길게는 20년 넘게 커리어를 쌓아 온 직원들에겐 지역에선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더 걱정이다. 대구시는 해산 이후 국제회의 업무를 엑스코로 이관할 예정이고, 이에 따른 고용 문제는 엑스코의 소관이라고만 얘기하는 상황이다. 업계 특성상 엑스코에서 계속 일할 수 없다면 이들은 다른 분야의 일을 하거나,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한다.
권 팀장은 “행사를 유치할 땐 대구가 갖는 도시로서의 매력, 지원에 대한 부분, 산업에 대한 전망 3가지를 어필한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도시를 남에게 선택하라고 설득할 순 없다. 그렇기에 대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해왔다. 하지만 이젠 자신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 팀장도 “대구시가 설립했고, 20여 년간 투자하고 관리해 온 곳이기에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한순간도 대구시 국제회의전담기구에서 일하는, 공공기관 직원임을 잊은 적 없다. 마이스 산업은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산업이기에 직원 한 명, 한 명이 가진 노하우와 네트워크는 단순히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렵다”며 “대구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한 우리가 대구를 떠나지 않고 대구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일터가 반드시 지켜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