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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경산 코발트광산과 대원골 피학살자 유족 증언을 담은 두 권의 구술 증언집 “그날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와 “고난의 세월 누가 대신 울어주나요”가 도서출판 학이사(대표 신중현)에서 출간됐다.
2000년부터 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활동을 해온 최승호 경산신문 발행인인 엮은 두 권의 책은 2007년, 2020년, 2022년, 2024년 4차례에 걸쳐 유족과 목격자 및 활동가 등 총 34명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기억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증언 외에도 ‘일제와 보국코발트광산 연혁’(1906.7.~2023.6. 26.)과 1950년 사건 당시부터 2023년 11월까지 ‘진실규명 작업일지’를 더한 이 책은 총 1,200여 쪽에 이르는 역사적 기록물이다.
이필용: 코바레이트로 갔다 그 소리 하드라고.
최승호: 코발트로 갔다.
이필용: 예. 그 소리 듣고는 우얄 도리가 없지요. 아무 한탄할 데도 없고, 그때는 그런 소리 마음 놓고 어데 가 할 수도 없고.
최승호: 잡히갔다 소리도 못 하고.
이필용: 예, 챙피하기도 하고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그래가주고 두 고부가 뺄간 거로 데리고 농사짓고 하민서 우리 시어머니가 그래가 화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최승호: 몇 년 후에 몇 년 더 사시다가?
이필용: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때 돌아가셨어요.
최승호: 10년 동안 화병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네요. 그런데 코발트로 갔다 소리 듣고 나서 코발트 한 번 찾아가 보셨나요?
이필용: 가보지도 못했어요.
최승호: 코발트가 어디 있는지는 알았지요?
이필용: 예, 평산에. 평산에 우리 언니가 살았거든요. 언니 집에 가이끄네 언니가 카드라고예. 도랑에 그 핏물이 흐르드라고. 그래도 뭐 누가 아는 사람도 없고 말할 데도 없고 하니까 고스란히 당했지요.
– 1권 232쪽 ‘이필용 구술증언’(배병석의 처) 가운데
신중현 학이사 대표는 “유족 증언은 구술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표준어규정에 따라 수정하지 않고 구어체 그대로 실었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떠난 날조차 알지 못하고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던 유족의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가족이 언제 돌아올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던 이들의 가슴속 응어리진 한을 풀어놓은 증언집”이라고 말했다.
최승호 발행인은 머리말에 “지난 70년 세월을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고, 눈이 있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하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이다. 희생자의 얼굴도, 붙잡혀 가던 그날의 기억도 희미해졌지만 ‘이제는 돌아오겠지’ 하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사시는 분들의 기억이야말로 민간인학살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용서와 화합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적었다.
지난 26일 증언집 출간을 기념하는 학이사의 저자 초청 북토크가 동네책방으로 등록된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학이사 전신 이상사 터)에서 열렸다. MC 하승미의 진행으로 구술을 정리한 온마을TV 박선영 편집인, 유족 사윤수 시인을 비롯한 관객 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최 발행인은 북토크에서 “기억의 역사화를 위한 첫 발걸음인 이 증언집이 쥐꼬리만한 보상으로 서둘러 진실을 은폐하려는 가해자 집단에게 진실규명 그리고 반성과 용서라는 정의실현 없이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할 수 없다는 교훈으로 남기 바란다”며 “역사에서 민간인학살을 배우지 못한 세대들에게 읽혀지기를, 무엇보다도 여전히 민간인학살을 부정하는 가해자와 그 동조자들에게 반성과 사죄의 회초리가 되기를 빈다”고 말했다.
MC 하승미는 “글자도 모르고 농사만 짓다 밤과 낮의 각기 다른 사상들에 의해 종일 고초 당하다 죽어갔을 선량한 시민들, 혹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느라 최소한의 존엄도 지켜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을 이들 모두가 시대가 만든 피해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유가족이 말했다. 재판이라도 받게 해야지, 또 다른 목격자는 말했다. 총 많이 쏘는 것도 귀찮아 굴비 엮듯 묶어서 산 채로 수직갱도에 떨어트렸고···이름 모를 모두의 넋을 기린다”며 구술을 인용한 인사로 북토크를 끝냈다.
이 책에 구술 증언자로 나선 유족은 나정태, 박정자, 이금순, 이정우, 이태준, 전장윤, 정영호, 이필용, 이선이, 박성운, 박귀분, 윤용웅, 손계홍, 이영기, 이대우, 정옥이, 정시종, 김장수, 이태옥, 도종열, 이인백, 이수연, 권춘희, 남효덕, 문태주, 이영대, 최주홍 등 27명이다.
유족 외에도 활동가 및 목격자 구술도 받았는데, 최초로 언론에 보도한 강창덕을 비롯해 김무술, 박효열, 안경치와 유동하, 최재림, 김주영 등 7명이다.
증언집을 엮은 최승호는 1960년 5월 매일신문 강창덕 기자의 최초 기사화에 이어 1993년 8월 두 번째로 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사건을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 관련 피해자 현황조사 용역사업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엮은 책으로 경산코발트광산 사진집 ‘잃어버린 기억’과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사건 백서'(2권) 등이 있다. 현재 (주)경산신문사 대표이사 겸 발행인, (사)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이사로 일하고 있다.
정용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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