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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당시부터 친일 미화 논란이 일었던 대구 달성공원 앞 순종황제 동상이 건립 7년 만에 철거됐다. 순종황제 동상이 애초 설치 목적인 도심재생이나 관광에 그다지 효과는 없고 논란만 일으킨 만큼 대구시가 설치 절차를 밟는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저녁 대구 중구(구청장 류규하)는 순종황제 동상을 철거했다. 동상은 이후 거취가 정해질 때까지 중구청에서 임시로 보관하고, 이어서 어가길의 옥쇄와 안내 비석 등도 철거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달성공원 정문을 등지고 중구 수창동에서 인교동까지 2.1km가량 이어지는 순종황제 어가길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중구가 국비 35억 원을 포함한 70억 원을 들여 조성한 곳이다.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의 하나로 추진됐다. 5.5m 높이의 순종황제 동상을 세우는 데는 2억 5,400만 원이 들었다.
달성공원 정문 앞 보행섬에 위치한 순종황제 동상은 순종이 1909년 1월 남순행 중 대구를 다녀간 일을 재현한 조형물로, 설치 당시에도 논란이 일었다. 일본이 반일 감정을 무마하려고 순종을 앞세워 순행을 간 역사를 조형물까지 세워 기념하는 게 적절한지에 더해 당시 순종이 제복을 입고 순행을 다녔음에도 조형물은 제례복 차림인 것도 문제가 됐다.
설치 이후에는 사차선 도로의 가운데 두 개 차로를 차지한 보행섬 때문에 주민 민원이 빗발쳤다. 중구는 보도자료를 통해 “7년간 3,0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이 인근에 건축됐고, 상설 새벽시장이 활성화되는 등 조성 당시와 비교해 유동인구가 늘고 통행차량이 증가해 보행과 안전사고의 어려움이 있어 철거를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중구는 공공조형물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위원 11명 전원 찬성 의견으로 순종황제 동상 철거를 결정했다. 이후 올해 말까지 현재 2차선 도로인 달성공원 진입로를 왕복 4차선 도로로 확장하는 공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철거와 도로 확장공사에는 4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대구시가 박정희 동상 건립을 추진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는 와중에 중구가 순종황제 동상을 철거하면서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선 순종황제 동상 철거를 교훈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지혁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어두운 역사도 물론 역사다. 하지만 역사를 굳이 동상의 형태로 만들어 기억해야 하는가. 순종황제 동상이 애초 설치 취지였던 도심재생이나 관광에 효과적이지도 않았다”고 짚었다.
이어 “역사를 기억하는 건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어떻게 현재를 바라볼 것인가 배우기 위함인데, 개인을 우상화하고 동상으로 기념하는 방식 자체가 전근대적이다. 이미 세운 동상은 어쩔 수 없더라도, 근대화의 상징인 박정희를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기념할 필요가 있냐고 질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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