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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다 다치기 일쑤인 이주노동자. 그러면서도 임금을 떼먹히거나 쉽게 해고당하고, 미등록이 되면 최소한의 지원이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는 이주노동자를 10여 년 무료로 지원한 오세용 전 경주이주노동자센터장이 얼마 전 고발됐다. 한국공인노무사회에 의해서다.
이들은 오 전 소장의 무료 상담이 변호사법과 노무사법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최근 이 사건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죄는 인정되지만, 이주노동자 권리 구제를 위한 일이었고 금전적 대가는 받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법정에 세우지는(기소) 않기로 한 것이다.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같은 검찰 판단이 노무사 조력을 받아 권리구제를 하기 어려운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나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의 취지와 노력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관련기사=[14일의 금요일] (9) 이주노동자 돕던 오세용 소장이 수사 받는 이유(‘22.12.16))
24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민주노총, 정당, 전국 이주민단체, 종교단체, 인권단체 등 30여 단체가 주최한 노동권 사각지대 이주노동자 무료 지원활동 범죄화 규탄 헌법소원 심판 청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기소유예 처분이 오 소장을 비롯한 이주노동자 단체 활동가의 직업 선택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면서 기소유예처분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지난 1월 검찰은 오 소장 수사 결과 변호사법 위반 혐의는 무혐의, 공인노무사법 위반 혐의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검찰은 2022년 한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해결을 위해 오 전 소장이 이주노동자를 대신해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고 노동청 조사에도 대리인으로 출석한 사실은 공인노무사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공인노무사법에 따르면 공인노무사가 아닌 자는 노무사 관련 직무를 업으로 하면 안 된다. 검찰은 오 전 소장의 활동이 설령 대가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업으로 한 행위라며, 이 때문에 법을 위반한 것으로 여겼다.
검찰은 “피의자는 10년 이상 연평균 500여 건의 진정서 작성 및 진정 대리를 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 목적이 비록 외국인근로자의 권리구제를 지원하는 것이고 직접적인 금전적 대가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민주노총 부설기관(경주이주노동자센터)을 운영하며 급여 내지 활동비를 받은 점은 ‘업’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언어, 제도에 대한 부지 등으로 인해 홀로 진정을 제기하기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들의 권리 구제 지원을 위해 대리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 점, 금전적 대가를 받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참작한다”고 기소유예 취지를 밝혔다.
금전적 대가를 받지 않았고, 참작할 사정은 있지만 실정법을 위반해 죄가 있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이에 따라 헌법소원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 않은 노무 업무 관련 권리구제 활동이 범죄에 해당하는지, 또한 이 같은 행위가 직업선택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오 전 소장 측은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통해, 공인노무사법 위반 여부를 대가성이 아닌 반복적으로 권리구제 지원을 한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고소대리는 위법하지 않고 진정대리는 위법하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검찰도 오 전 소장은 변호사법 위반에 대해서는 불기소 처분했다.
오 전 소장 측은 “‘업’을 판단할 때 행위의 목적이나 동기, 영업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계속성, 반복성만을 보는 것은 전체 법체계 질서에 맞지 않고 근로자 복지 증진과 기업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공인노무사제도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열악한 노동조건에 일하며 폭행, 성폭력 등 인권침해,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을 일상적으로 겪는 이주노동자 권리구제 지원을 했다. 권리 침해를 당한 이주노동자가 직접 기관을 찾거나 권리구제를 요구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데, 이를 지원해 이주노동자 권리구제를 돕고 국가기관 업무처리도 원활하게 했다”며 “이 사건 기소유예 처분으로 이주노동자 권리 구제 활동이 범죄 행위로 규정되면서 직업 결정의 자유, 직업 수행의 자유도 침해됐다. 활동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침해됐다”고 설명했다.
기자회견 주최 측은 “노무사회가 무고한 활동가를 고발한 것도 규탄받아야 할 일이며, 검찰의 기소유예 또한 노무사회의 권리남용을 묵인한 것”이라며 “검찰의 기소유예는 이주노동자 권리구제를 위해 상담하는 활동가와 상담자를 범죄행위자로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무사들이 요구하는 높은 수수료는 이주노동자가 권리구제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소다. 어렵게 진정해도 사업주와 합의를 종용받는 이주노동자는 다시 낙심한다. 이주노동자에게 무료 상담 활동은 생명줄과 같다”며 “전국의 이주활동가들은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상담과 권리구제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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