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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대구 중구 ‘라일락뜨락1956’에서 김옥경 시인의 세 번재 시집 <낮술 한잔할래요>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시집은 표제시 ‘낮술 한잔할래요’와 ‘먼지가 고요하다’ 등 60편의 시와 김남호 시인의 해설 ‘낮술로 시의 사막을 건너는 법’을 담았다.
시집은 작가의 일상을 기록한 듯한 “11시 59분, / 잠으로부터 사망 판정 시간을 내린다”(‘불면증’)와 “두 개의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지점”(‘반월당역’) 같은 시어들과 사회적 고통에 함께하는 ‘세상에서 가장 좁은 골목_1029 참사에 부쳐’, ‘학대_의붓어머니의 학대로 숨진 열두 살 아이의 죽음에 부쳐’, ‘원격조정’ 같은 시편 등을 3부로 나눠 실었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
굶주린 개들이
밤을 물어뜯으며 돌아다니다
마을로 찾아든 다음 날늘 묶어둔 것이 안쓰러워
잠시, 바람이나 쐬고 오라고
목줄을 풀어주었더니
미친 듯 뛰쳐나가던 녀석
두어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너의 본능을 일깨워주고 간
낯선 정체는 무엇인가?목줄을 쥔 자와 목줄에 걸린 자
밥줄과 목줄 사이의 곡예에서
넥타이를 던져버린 나처럼
털 묻은 목줄을 벗어놓고 가버린 너는
이제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비가 내린다,
동짓달 비가 여름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텅 빈 너의 밥그릇엔
빗물만 가득하다”– ‘목줄’ 전문
문학평론가 김남호(박경리 문학관장)는 “시 쓰기는 내 욕망에 정직하게 답하는 일이고, 그 답을 다시 부정하는 일이다. 그러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는가. 깨어있는 의식으로 끝없이 시의 자리를 질문해야하는 시인에게 위태로움은 자기 존재증명에 다름 아니”라며 “’낮술 한잔할래요’라는 이 위태로운 언술은 취기를 빌려 현실을 도피하자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내 안의 사막과 온몸으로 맞서겠다는 자기다짐”이라고 해설했다.
“찢어진 스타킹처럼 대책 없는 날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걸어둔 작은 카페 입구
-낮술 환영-카페 유리창에 소금기가 얼룩져있다
약간은 찝찔하고 밍밍한 눈물처럼느리게 카페의 문을 잡아당긴다
두 개뿐인 탁자 사이로 앉아있던
무료한 시선의 주인 여자
눈빛이 붉다
“어서 오세요”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탁자 위로
팔꿈치를 내린다
“왜 낮술을 마시나요?”
“바다가 너무 새파랗네요”오늘은 파란 기분
그래서 파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아나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다가
코끝을 간질이는 알레르기 비염
콧물이 떨어지는 순간을 본다
자신의 공간을 버리고 내 주위를 빙빙 돌던 고양이
바닥을 기어가는 벌레를 조롱하고 있다새로운 안주가 나왔으니
너도 낮술 한잔할래?”
-‘낮술 한잔할래요’ 전문“귀신에 홀린 듯그가 시키는 대로
메모를 하고, 여기저기 돈을 빌린 후
고금리 캐피탈의 대출금을 상환한 뒤에
정상적인 대출의 기회를 잡으려고
가상 계좌로 돈을 흘려 보냈다”-‘원격조정’ 부분
김옥경 시인은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3년 『시와 사람』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벽에 걸린 여자』(두엄, 2014)와 『바다의 전설』(두엄, 2017)이 있다.
정용태 기자
joydrive@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