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다시, 똘레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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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한 홍세화 선생을 생각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홍세화 선생의 강연을 한 번 듣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은 것 외에는 별다른 인연은 없었지만, 그 책 말미에 쓴 차창 밖으로 보이는 파리의 아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 말미에 나오는 장면이다. 홍세화 선생은 야간 운행을 끝내고 파리의 아침이 해사하게 밝아올 때 아무도 없는 광장을 택시로 누비다가 불현듯 감격했다. 깊은 실존의 감각을 느끼며 환호했고, 이는 홍세화 선생의 일생일대 화두인 ‘똘레랑스’로 이어진다.

유아기 한국전쟁을 경험한 홍세화 선생은 “나는 사랑을 배우기 전에 증오부터 배웠다”고 했다. 분단된 조국에서 외조부모에게 맡겨진 홍세화 선생은 반공을 국시로 하는 박정희 정권 아래 청년 시절을 보내다 파리로 망명했다. 파리에서 생업으로 택시를 몰다 여러 승객들을 만났다. 그들을 통해 접한 똘레랑스는 그것이 부재한 한국 사회를 성찰하게 했다. 똘레랑스의 부재. 즉 ‘앵똘레랑스’는 한국이 처한 분단이라는 현실에 기인했다. 다양한 존재와 목소리를 국가가 짓누르고, 사람들끼리 서로 간에 짓누르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 반공이라는 딱지, 앵똘레랑스.

차창 밖 하늘에 여전히 구름이 먹빛으로 가득 끼었다. 홍세화 선생이 긍정하려 했던 우리 사회는 그가 떠남으로써 좀더 무채색이 된듯하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차이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앵똘레랑스를 향해 치닫고 있다. 홍세화 선생이 함께했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간사냥 콘텐츠가 점점 조직적 체계를 갖추고 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콘텐츠는 별다른 사회적 저항 없이, 제도적 통제 없이 유통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사회적 연대는 미약하다. 얼마 전 대구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집회에는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이주민, 심지어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체포 위험을 무릅쓰고 다수 참여해 인간사냥 중단을 외쳤다. 하지만 이주민들만의 목소리에 머물러 있다.

▲대구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강제추방을 규탄하는 이주민들의 집회가 열렸다. (뉴스민 자료사진)

앵똘레랑스의 세계에서는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는 이들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검찰은 최근 오세용 전 경주이주노동자센터장이 공인노무사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소유예 처분하긴 했지만, 대가를 받지 않고 이주노동자 노무상담을 하고 체불임금 등을 해결한 행위가 죄가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은 한국공인노무사회의 오 전 소장 고발로 시작됐다. 이에 대한 헌법소원이 이번 주 제기된다.

이주민에 대한 제도에 똘레랑스를 기대하는 건 요원하다. 이달부터 법무부는 또다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동단속을 시작했고, 현장에서는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다시 추방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 마찬가지로 요원하게 느껴진다. 대구의 광장에 박정희 동상이 새로 건립될 것 같아보여서다. 홍세화 선생이 몸담았던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를 공안탄압한 박 전 대통령 동상 건립. 광장에 설립되는 박정희 동상은 앵똘레랑스의 상징처럼 보인다. “성장보다 성숙”하라는 홍세화 선생의 마지막 당부는 그래서 더욱 울림이 크다.

“세상을 혐오하기는 쉬운 일이다. 혐오하기보다는 분노하라. 분노하기보다는 연대하고 동참하라.” 파리의 광장에서 고독과 실존을 느낀 홍세화 선생은 그 이후 삶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부단히 긍정하며, 우리 사회의 목소리 없는 이들과 함께하려 했다. 이제 그 일은 남은 이들의 몫이다. 이주민과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이주민과 그들의 친구들이 다시 대구 광장에 모인다. 박정희 동상 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22일부터 천막농성도 시작됐다. 다시, 똘레랑스를 생각한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