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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은 지난 4월 12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사설을 냈다. 어떤 선거제도든 찬성과 반대가 있는 법이고 이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야 최선의 선거제도를 찾아가는 과정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어떤 의견을 피력하든 사실에 충실하고 앞뒤가 맞아야 한다. 매일신문 사설은 왜곡과 무지에 기반하고 있다.
매일신문은 첫 문장에서 “51.7㎝ 길이의 괴이한 투표용지로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표현했다. 아무리 뜯어봐도 맞는 소리가 하나도 없다. ‘51.7cm 길이’가 괴이하다면, 전지급인 네덜란드 투표지는 괴물인가. 4년 전 한국의 길어진 투표지를 비웃던 북한은 선진국인가. 투표지가 길어서 유권자가 혼란스럽다는 것도 희한한 진단이다. 자신이 지지할 정당이 있는 유권자는 명칭을 찾아 투표하면 된다.
이번 선거 실질적 준연동형 아니며, 진입 장벽 3%도 유지
출마 정당수 늘어난 원인은 2014년 헌재 판결
매일신문은 더불어민주당이 몇몇 소수정당과 함께 만든 비례대표 위성 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을 두고 “자기 정파의 입맛에 맞는 비례정당의 원내 입성에 안전판을 마련해 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썼다. 이것은 긴 투표지에 분노하는 매일신문의 태도와 모순이다.
더불어민주연합 덕분(?)에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열린민주당, 진보당 등 네 정당이 비례대표 투표지에 오르지 않아 투표지 길이를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 ‘긴 투표지’가 악이라면 매일신문은 국민의힘의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를 향해 “자유통일당 등을 품었어야 한다”고 일갈할 일이다.
더구나 투표지 길이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아무 상관이 없다. 첫째, 위성정당 때문에 준연동형은 거죽만 남았을 뿐 이번 선거는 실질적으로 병립형으로 치러졌다. 진입 장벽 3%를 넘는 정당도 병립형일 때보다 더 많은 의석수를 기대할 수 없다.
둘째, 3% 진입 장벽이 그대로였다. 득표율을 자신할 수 없는 정당 입장에서는 진입 장벽이 3%로 유지된 것이 부담스럽다. 병립형이라도 진입장벽만 낮추면 출마 정당수는 늘어나게 돼 있다. 하지만 예전 그대로인 진입 장벽은 군소정당의 원내 진출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면 왜 출마 정당수는 늘어났을까.
셋째, 투표지가 길어지게 만든 직접적 요인은 2014년 헌법재판소 판결이다. 그 이전에는 2% 득표 미만 정당은 등록이 취소되고 그 다음 총선까지 같은 당명을 쓰지 못했다. 이 법칙이 위헌 판결을 받아 사라지면서 등록 및 출마 정당수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뻔한 인과관계가 있는데도 매일신문은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조국혁신당은 병립형에서도 등장할 수 있는 정당
연동형 계산은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 “어렵다” 반복한 언론 책임은?
매일신문은 “조국혁신당의 등장은 기가 막히는 광경이었다”고 썼다. 조국혁신당과 준연동형은 무관하다. 위에서 설명했지만 이번 선거는 실질적으로 연동형이 아니었다. 조국혁신당이 같은 득표로 더 많은 의석을 챙기는 선거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만약 민주당이 유일한 위성정당을 공식 지정하지 않고 ‘몇몇 정당들 중 하나’에 투표하도록 유도했다면, 준연동형의 영향을 받은 선거라고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위성정당은 당명도 쏙 빼닮아 있는 ‘더불어민주연합’ 하나였다.
조국혁신당이나 자유통일당, 소나무당 같은 정당은 병립형 비례대표제에서도 나올 수 있는 정당이다. 병립형이든 연동형이든 지역구 투표지와 비례대표 투표지가 분리되어 있으면, 한 유권자가 서로 다른 정당을 찍는 ‘분할투표’는 가능한 것이다. 명목상으로도 병립형이어서 위성정당조차 없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조국 대표 등의 인사들이 민주당에 입당하거나 혹은 아예 출마를 안 했을까?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에 해를 덜 끼치는 범위에서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욕구가 뚜렷하다. 병립형은 이들의 아무 것도 막지 못한다.
매일신문은 사설 후반부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헷갈리고 복잡하다는 비판은 진작에 나왔다”고 적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필요한 계산은 분수끼리 곱하거나 나누는 수준으로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할 수 있다. 개념상으로도 복잡하지 않다. 지지율만큼의 의석수에 비해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가 모자란 만큼을, 각당끼리 비교해서 보정용 의석을 배분하면 된다. 이렇게 설명하면 될 것을 4년 넘게 “어렵다”만 반복한 언론 자신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매일신문은 “거대양당의 위성정당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순진한 발상”이라고 일축한다. 위성정당을 완전히 차단할 방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을 뺄 수는 있다. 가령 지역구에 후보를 등록한 정당은 무조건 비례대표 명부에도 등록하게 한다면, 더불어민주연합과 국민의미래가 가져간 표의 상당수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머물렀을 것이다.
득표율-의석수 불비례는 전국 국힘에게 타격, 영남 국힘에 수혜
매일신문, 이 문제부터 답해야
사실 이번 총선은 매일신문이 지향하는 총선과 별 차이가 없다. 비례대표 진입 장벽은 그대로고 준연동형은 발휘되지 않았다. 정당 창당 요건이 완화되지도 않았다. 비례대표 투표지 50cm는 정당 난립의 결과 이상으로 정당 난립을 억제한 결과다. 정당 난립 억제가 정치 제도 구상에서 주요 목적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매일신문의 목적이라면 매일신문도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수와 정당 지지율간의 극심한 불비례성을 소정의 의석으로라도 보정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지역구 득표수-지역구 의석수의 불비례성은 극심했다. 이로 인해 전국 국민의힘은 큰 피해를 입었고, 영남 국민의힘은 수혜를 봤다. 매일신문이 이 제도를 어떻게 옹호하거나 비판할지 궁금하다.
부디 논의 수준을 진전시키기 바란다. 매일신문의 준연동형 왜곡은 4월 12일 사설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김수민 객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