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 요원한 의·정 갈등, 노동자·환자 피해 속출···“가짜 개혁 멈추고 공공의료 강화해야”

의료계 투쟁 강도 상향···준법투쟁으로 진료 축소
전국 곳곳에서 의료 공백 여파 사망 사고 잇따라
불법 의료 내몰린 간호사, 무급 휴가도 강요

13:25
Voiced by Amazon Polly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두고 의·정 갈등이 깊어지면서 시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의대 교수들이 ‘준법투쟁’으로 진료시간을 단축했고, 개원의도 이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사 집단에 대한 당근책으로 의료민영화를 통한 ‘금전적 보상’을 제시해 의료개혁이란 명분도 “가짜”라는 비판이 잇따르게 됐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약 1시간 분량의 담화문을 발표하고 ‘개혁 의지’를 관철하려는 듯했지만, 그간 정부가 주장한 필수의료,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의대 증원이란 명분을 무색게 하는 의료민영화 강화책을 담화문에 담아 논란을 빚었다.

윤 대통령은 “의사들의 소득은 지금보다 절대 줄지 않을 것이다. 의료산업 발전에 따라 바이오, 신약, 의료 기기 등 의사들을 필요로 하는 시장도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며 “의료 바이오의 해외 시장 개척 과정에서, 의사들에게 더 크고, 더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다. 의료에 대한 정부의 재정 투자는 더 큰 민간 투자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2,000명을 늘려도 의사들 걱정 만큼 경쟁이 심해지지 않으며 오히려 더 큰 민간 의료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럼에도 의사 단체는 윤 대통령 담화를 ‘실망’적이라고 평가하고 계획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1일부터 24시간 연속근무 후 익일 주간 업무 오프를 원칙으로 했고, 지난달 25일부터 진료근무 시간을 법정근로시간인 52시간으로 줄이기로 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1일부터 외래 진료를 최소화해 중증·응급 환자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개원의도 주 40시간 진료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으면서 일선 병·의원으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대구경북보건복지단체연대회의가 기자회견을 열고 명분 없는 의사 파업 중단과 공공의료 확충을 촉구했다.

의료계 투쟁 강도 상향···준법투쟁으로 진료 축소
전국 곳곳에서 의료 공백 여파 사망 사고 잇따라
불법 의료 내몰린 간호사, 무급 휴가도 강요

이런 사이 전국 곳곳에서 의·정 갈등으로 커진 의료 공백 여파로 시민들이 숨지는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엔 대전에서 80대 심정지 환자가 병상 부족, 의료진 부재, 중환자 진료 불가 등의 이유로 병원 7곳에서 퇴짜를 맞고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끝에 숨졌다.

지난달 6일엔 부산에서 90대 여성이 부산시 지정 공공병원에서 심근경색을 진단 받고 대학병원으로 전원하려고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았고, 울산으로 옮겨 치료를 시도했지만 숨졌다. 30일엔 충북 보은에서 생후 33개월 여아가 도랑에 빠졌다가 구조돼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전원할 병원을 찾았지만, 10곳이 이를 거부해 끝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병원 현장도 난맥상이 깊어지고 있다. 3일 대구경북보건복지단체연대회의가 명분 없는 의료 파업과 공공의료 강화를 촉구하며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갈등으로 인한 피해가 환자와 병원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김영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대구지부장은 “전공의를 떠난 병원 현장에서 의사 업무는 간호사에게 전가되고 있다. 평소에도 전공의 부족으로 병원 현장에선 PA 간호사라는 이름으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불안하게 의사 업무를 해오던 상황인데, 의사 파업으로 더 많은 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해야 하고, 불법 의료행위에 내몰려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한 대학병원 노조 분회장도 발언에 나서 “전공의 집단행동과 의사들의 진료 축소까지 한 달 넘게 이어지는 과정에서 환자가 많이 감소됐고, 병원의 수입 감소로 이어졌다”며 “수입 감소는 병원 노동자와 환자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병동 간호사들에게 무급휴가를 강요하고 있고, 진단검사의학과 야간 근무자 수도 줄였다. 병동 환자들,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검사 결과를 제공하기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진정한 의료개혁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공공의료 확대와 강화”라며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지역 의료 붕괴를 해결하고,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지역 공공의사 양성과 이를 훈련시킬 지역 공공병원을 만들고 확충해야 한다. 국립대병원 또한 무늬만 공공병원이 아니라 진정한 공공병원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이 방향으로 한국 의료를 실질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