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지방을 이용하는 의대 증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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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 3만 원, 호르몬약 15만 원. 여기에 채혈이나 혈액검사 항목에 따라 비용은 별도다. 사람 병원이 아니라 동물병원 이야기다. 고양이 여러 마리를 반려하면서 동물병원에 갈 일이 자주 있는데, 이렇게 ‘의료민영화’ 간접체험을 하고 있다. 동물약품은 일반의약품을 5kg남짓 고양이 무게에 맞춰 용량 조절한 것이지만 공공 의료보험이 없다 보니 ‘실제 의료비’를 체감하게 된다. 고양이가 아픈 것보다 ‘집사’ 인간이 아픈 게 가계 사정에도, 정신적으로도 훨씬 나은 상황이다. 나는 ‘공공의료보험’도 적용 받을 수 있고, 1만 원 이상 병원비가 나오면 실손보험도 청구할 수 있다. 물론 1만 원이 넘을 일이 잘 없다.

최근 의대 정원 논란을 두고 증원, 혼합진료 금지, 의료민영화 수순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총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는 정부는 숫자만 제시하고, 더 나은 의료시스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의료체계에서 주된 문제로 지적되는 필수의료 부족 문제와 공공의료 부족, 의료서비스 수도권 집중과 같은 불균형 문제는 시장주의에 기인했다. 따라서 증원 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문제의 원인을 고려하지 않고, 공급만 늘리면 현재의 ‘시장주의’를 더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게 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의대 정원이 총선용 정책, 의료민영화 수순을 위한 작전이 아니라면 현행 의료체계의 문제 진단부터 제대로 해야한다. ‘긴병에 효자없다’는 말처럼 공공의료보험이 있는 지금도 재난적 의료비는 개인과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간다. 고령화 시대로 가면서 공공의료, 지역의료, 필수의료는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단순한 지역인재선발전형 확대로는 초등학생부터 지방에 역유학 오게 하는 입시 커리큘럼이 성행하고, 수도권과 지방 의대 사이에 줄세우기로 입시 경쟁을 더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의료의 공공적 역할을 회복하지 않는 상황에선 지방은 또다시 이용만 될 뿐이다.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 공공병원 등에 대한 논의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일본의 경우 의대에서 입학생 지역정원제를 운영한다. 이들은 입학금을 면제받고 6년간 장학금을 지원 받는 대신 지원 내 의사가 부족한 곳에서 의무 근무를 해야하는데, 의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전문의 자격을 박탈한다고 한다.

24일 부산대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교수의 과로사 소식이 전해졌다. 전공의 사직 여파로 응급실 업무가 늘어나며 과로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5일은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을 예고한 날이다. 보건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의 면허를 이번 주부터 정지시킨다고 한다. 상황은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다. 의료공백 우려에 더해 갈등 사태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나 의료계 만의 이야기로 둘 것 아니라 지역에서, 약자들이, 언제든 재난적 의료비에 맞닥뜨릴 수 있는 이들이 필수의료 보장과 지역균형, 공공의료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