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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청년초점은 청년 예비언론인의 눈으로 본 우리 사회에 대한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중학교 때 우리 학교에는 양궁부와 펜싱부가 있었다. 그래서 체육교과 선생님들은 운동 신경이 좋은 아이들에게 종종 펜싱하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나 또한 그 제안을 받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칼보다는 활을 더 멋있어 한 취향 탓에 ‘펜싱 말고 양궁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럴 때면 선생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양궁은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애들 아니면 안 돼.” 14살, 양궁은 꿈도 못 꿀 나이였다.
우리나라은 엘리트 체육 위주로 운영된다. 소수의 선수가 어릴 적부터 전문 지도사에게 집중적으로 훈련받는 것이다. 체육특기생들은 오전 수업만 듣거나 최소한의 출석 일수만 채운 뒤 나머지 시간은 연습에 매진한다. 그래서 내가 다닌 중학교에선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이 수업을 듣지 않으려고 일부러 운동부에 들어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비록 높은 운동 강도로 인해 금방 나오기는 했지만, 이들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는 운동부의 특성을 악용한 셈이었다.
이와 반대로 생활 체육은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일상’에서 체육 활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학창 시절만 되돌아보더라도, 체육 시간은 대개 자습 시간으로 활용되었다. 진로를 체육으로 하지 않는 이상 체육 활동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중·고등학교뿐 아니라 초등학교도 체육 활동 문제가 심각하다. 우선 초등학교 1, 2학년은 별도의 체육 교과가 없다. 초등학교의 체육 전담 교사는 2020년 기준 68%이며, 2021년부터는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부족한 체육 수업은 사교육을 통해 채워진다. 이는 곧 부모의 재력과 관심 정도에 따라 체육 활동이 결정되는 셈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생활 체육 기관도 부족하다. 일본이 학교나 동네에 테니스장, 수영장, 야구장 등 다양한 체육 시설을 갖춘 것에 비해, 한국은 학교의 흙 운동장이 전부인 수준이다. 학창시절 축구나 피구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다. 체육 시설이 없다는 건 학생의 문제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직장인이나 고령자 등 일반인들의 체육 활동 또한 제한된다. 우리나라 성인(19~64세)의 신체활동 실천율은 48%로 이는 전 세계 평균인 72%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65세 이상 노인의 불충분 신체활동률은 66.8%, 청소년은 94.1%다. 즉, 성인의 반 이상이, 상당수의 노인이,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충분치 못한 신체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소수만 운동을 하고 다수는 운동을 못한다. 현재 한국 체육 활동의 실태다. 그렇기에 이제는 생활 체육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만 하더라도 엘리트 체육 위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국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생애 스포츠 사회’를 공표했다. 이를 위해 생활 체육을 위한 스포츠부와 엘리트 체육을 위한 엘리트 스포츠부로 정부 기관을 분리했다. 또한 생애 스포츠 사회 구현을 위해 스포츠 체험 활동 등을 주관하거나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지원했다. 누구나 언제든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는 ‘편의성’ 위주 정책으로 일본은 성공적으로 생활 체육을 정착시켰다.
그렇다면 생활 체육이 엘리트 체육과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단순히 국민의 체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걸 넘어서서, 국민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체육특기생’에게도, ‘일반인’에게도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체육특기생에겐 진로를 고민할 시간이 주어진다. 수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이 과정을 통해 선수로서 진로가 확실해졌을 때 본격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 때로는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그만두어야 할 때도 제2의 안을 금방 찾을 수 있다. 일반인에겐 다양한 체육 활동 기회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함양할 기회가 주어진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피겨 등 익숙한 운동 사이 ‘컬링’이란 생소한 운동이 눈에 띄었다. 의성의 한 여고에서 청소하기 싫어서 시작했다는 ‘컬링 동아리’ 멤버들이 실업팀에 들어가고, 올림픽에까지 출전하며 은메달을 기록했다. 만약 그들이 나처럼 “컬링은 어렸을 때부터 안 하면 못한다”란 말을 들었다면, 우리는 2018년 그 감동의 순간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스포츠는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운동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발굴하거나 역량을 키울 기회를 갖는 것이 스포츠의 본질이다. 단순히 경쟁뿐만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연대를 위한 활동이다.
이현수
mglaqh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