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스크를 사기 위해 비가 오더라도 약국 앞에서 순번을 기다려야 했고, 흔하디 흔한 감기 진료도 쉽게 볼 수 없던 그 기억이 벌써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누군가에겐 잠깐의 해프닝으로 기억 남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잊을 수 없는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4년이 지나면서 스스로가 바뀌었다. 슬픈 기억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먼저 나서야겠다. 다들 힘든 시기를 함께 하고 있지만 같이 힘을 모아 헤쳐 나갔으면 한다.”
17일, 경북 경산 남매지공원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코로나19로 오인 받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숨진 정유엽(당시 17세) 씨 4주기 추모 행사가 열렸다. 추모 행사는 유엽 씨가 생전에 방송부 활동을 했다는 점에 착안해 ‘보이는 라디오’ 형식으로 진행됐다. 유엽 씨의 큰 형은 가수 김광진의 ‘편지’를 신청곡으로 부탁하면서, 같은 슬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힘을 보태겠다는 사연을 전했다.
보이는 라디오는 ‘정유엽과 만나는 라디오’라는 제목으로 유엽 씨의 아버지 정성재 씨를 비롯해 김동은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진료사업국장, 황명애 2.18희생자대책위원회 사무국장 등이 게스트로 출연해 유엽 씨를 추모하고, 공공의료 강화, 재난·참사 시스템 구축 등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정성재 씨는 “벌써 4주기를 맞이 한다. 1, 2주기 추모 행사도 남매지에서 했는데 그땐 엄청 추웠다. 그래서 오늘도 걱정을 했는데,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시고 따뜻한 정을 나눠 주셔서 유엽이가 같이 웃으면서 함께 할 수 있지 않나 싶다”며 자리를 함께 한 시민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오후 2시께 시작된 보이는 라디오는 3시 50분께 황명애 사무국장이 참여하는 2.18합창단의 합창으로 마무리됐고, 곧장 참석자들이 헌화하며 유엽 씨를 추모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코로나19 의료공백으로 인한 정유엽의 죽음을 잊지 않는 우리는 더 이상 의료공백으로 인한 아픔을 우리 사회가 겪지 않도록 공공병원 확충, 의료공공성 강화를 외쳐 왔다”며 “우리는 올해부터 경산에서 공공병원 확충을 위한 목소리를 모아가려 한다. 경산의료원 설립 촉구 활동에 나설 것”이라는 ‘우리의 다짐’을 낭독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정유엽 씨는 2020년 3월 18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의료공백 속에서 제대로된 처치를 받지 못한 채 열일곱 어린 나이로 숨졌다. 처음엔 가벼운 감기 증세처럼 병을 앓은 정 씨는 3월 12일경 발열 등 증세가 심해져 지역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된 경산중앙병원을 찾았지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항생제와 해열제만 처방받고 귀가했다. 이튿날 더 증세가 심해진 그는 영남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면서 13차례나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았지만, 감염 여부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채 숨졌고, 숨진 후에야 음성으로 최종 확정됐다.
유엽 씨의 부모와 지역 사회는 이후 그의 죽음이 코로나19 의료공백에 의한 것으로 보고, 같은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공공병원 확충 등을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해 1월에는 경산중앙병원과 영남대병원, 경산시, 정부 등을 상대로 죽음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현재 재판부는 경산중앙병원과 영남대병원의 의료기록감정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