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송전탑 part.1 삼평리사람들-최계향

최계향(75) 할머니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벼운 한기가 느껴졌다. 실내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간결해서 오는 한기다. 휑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거실에는 합성수지로 짜인 액자 두 개와 꽃다발 하나가 거꾸로 걸려있다. 옷장과 가전제품은 안방과 작은 방에 몰려있고, 안방에 있는 일인용 소파도 사치품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지은 지 20년이 채 안 된 건물은 한옥과 달리 옥상이 딸려 있다.

집이 주는 느낌과 비슷하게, 최계향 할머니는 살면서 어느 것에 얽매이거나 집착하지 않았다. 최계향 할머니도 어린 시절 피난 생활을, 이후 가사노동과 농사에 몰두하는 데에 삶을 보냈지만 그저 담담했다.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계향 할머니는 어린 시절 정비석의 『자유 부인』과 박경리의 『토지』를 탐독하며 교사가 되려는 꿈도 키웠다. 꿈을 이루지 못해도, 빈한한 시절 피난생활을 하며 소나무를 파먹더라도 긍정적으로 살아왔다.

숱한 삶의 질곡을 겪었음에도 바람에 날리는 풀씨처럼 살았던 최계향 할머니는 이제야 양보할 수 없는 하나가 생겼다. 평생을 살았던 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서려는 것이다.

옛날에는 모두 집성촌에 안 있었나. 내 살던 곳(창녕군 고압면 중대리)에는 경주 최씨가 많았지요. 여기는 박 씨라도. 성 다른 사람이랑은 놀도 안 했지. 그때는 유교가 있어가지고 타성이랑 내외했다 아닙니까. 마을 하나에 다 일가고 아재고 오빠형님이고 그랬지. 농사짓고 한태 모디 산께네 그럴밖에. 제사도 열 촌 안쪽으로는 모디가 지내고. 제사 한 번 지내면 사람이 엄청시래 많지. 문중마다 제실이 있어서 북적북적했어.

그때 친구들 참 많아 좋았는데 전쟁이 터진 기라. 내가 열한 살 때 밀양으로 피난 가는데 엄마는 애기랑 이불 보따리 이고, 아버지는 양식을 짊어지고 나는 내 밑에 남동생을 하나 업고 산을 몇 개를 넘었다 카이. 창녕이 격전지였거든. 음력 칠월에 피난을 가가지고 추석을 피난지에서 샜어. 산꼭대기에서 피난 갈 때는 어른들이 소나무를 꺾어가 천막을 치가꼬 자는데 여름이 되면 소나기가 막 오고 이랬던 기억은 난다. 피난 가며 키우던 소를 몰고 가다가 그런 데서 잡아먹고 그랬다. 그래 밀양에서 살다가 팔월에 다시 집에 들어왔다. 집에 오이 벼가 막 이래 무성하니 자랐고. 촌에서 뿔뿔이 헤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크게 잘못되진 않앴어. 공비 들어왔다고 두 집인가 불을 놔서 탔고, 몇 동네는 제실도 타고 그랬어.

곧 있다가 시집갔지. 그때만 해도 연애나 이런 거는 시골에서 안 통했다 아닙니까. 선이나 보고 그랬지. 스무 살 때, 우리들은 그때만 해도 지프차타고 갔다. 길이 너무 멀어 논께네 가마 타고도 못 왔고. 시집오니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어. 우리 어른이 참 좋아서 항상 날보고 칭찬해주고 그랬다. 옛날에는 밥해서 누룽지 긁어서 들어가려면 꼭 시누를 시키고 나를 안 시켰어. 성품이 좋았지. 시어머니도 외며느리라서 그런가 생전에 꾸지람이 없었어요.

그래도 시집가기 전에는 내가 공부도 좀 하고 했으니까 직장이라도 구해서 나가봤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지. 그 시절에는 외아들이 부모님 당연히 모셔야 한다는 인식이 딱 배겨 있었다니까. 젊은 시절에는 박경리 소설『토지』나 정비석 소설『자유부인』도 열심히 읽었거든. 그래도 그 책 빌려가 밤을 새워가 보고 또 빌려가 보고 그랬지. 지금은 내용도 모르겠다. 클 때는 공부 많이는 안 해도 책은 들고 나면 무슨 책이라도 밤새도록 잃고 그랬어. 학교 선생님을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 내가 지금은 이래 됐어도 내 딸아가 국문과를 나와서 초등학교 교사 하고 있으니 됐지.

선생 대신에 농사나 지었지. 나락 농사 많이 지었어 그 시절. 나락 농사를 지어서 팔기도 좀 했지. 그래서 돈을 좀 장만하고. 고추 농사도 지었지. 요새는 이렇게 둑을 만들어서 비닐 덮어가꼬 재배하는데 그전에는 비닐도 안 깔고 뭐 그래 심었어. 새벽에 일어나서 일하고, 그 참 시골에 골 맨다는 말 알아들으려나 모르겠다. 어디 일 나오라고 단체생활에 빠지면 안 나가면 벌금이다 단체생활할 때. 품앗이는 아니고, 나락 논에 물 대려면 수로가 안 있나. 지금은 세멘으로 돼 있지만 그때는 그냥 있었거든. 여름 되면 보하러 오라고 방송을 하고 그랬어. 거기 안 가면 벌금 내야 됐어. 돈 벌지는 못하고 그런 거라도 벌어야지 싶어서 다 했다. 안 가본 데가 없어. 거기 가면 전신에 남자들인데 부끄러워도 우짤 도리가 없어갖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70년대까지는 농사해서 돈을 못 벌었다. 꼭 농사짓고 먹고 남는 걸로 공부시키고 했어. 그리고 바깥어른 돌아가시고는 농사 많이 못 짓고, 남 줘뿌고 그랬어. 우리 애들 공부를 대학까지 다 못 시켜줬어.

박정희 시대에 조금 바뀌었지. 그때는 사회가 어찌 돌아가고 그런 것도 몰랐다. 농사짓는데 애기 아버지는 좀 알았겠나. 새마을 한다 카며 지붕도 개량하고 길도 넓히고 그랬지. 초가지붕이 슬래트 지붕으로 바뀌고. 재래식 화장실도 고치고 그랬지. 살기 좋아졌다는 건 이쟈 보리밥 먹다가 쌀밥 먹으니 하는 소리고. 통일벼가 들어와서 좀 나았어. 봄 되면 기근이다 아이가. 지금 같으면 은행에 돈 대출이 되는데 그때는 곡식을 빌리가 먹었어. 쬐메씩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칸께. 흉년도 한 번 들어뿌고. 기묘년에 흉년이 들어가. 그때만 해도 도리깨가지고 타작을 안했나. 비가 와서 반대로 들쎠노니 또 비가 오고. 비가 와서 못 썼어. 흉년은 말도 못한다. 우째 넘겼는가 지나가니 잘 모르겠네. 그때 통일벼가 나와서 좀 먹고 살게 됐지.

-나이 드신 분들은 박정희랑 새누리당 좋아하잖아요?

누구 찍어도 마찬가지라. 그 자리 가면 나오기 싫고. 전신에 사리사욕 채우지. 민주당에서 누가 됐노. 노무현이? 노무현이도 그때는 못한다 소리 듣다가 지금 해본께네 그때가 나았다 그런 얘기 나오지만 그 당시에는 또 노무현이 못한다고 그랬지. 매한가지라. 국정원 그런 것도 안 좋은 기라 그래 샀더만 우리는 잘 모르지. 정치 잘하면 우리들이 좀 더 안 낫겠나? 근데 그게 뭐꼬? 뭐 싸움판이지. 텔레비전에 청와대에 쳐들어갈라 카는 거(세월호 참사 당시 유족들이 청와대에 항의하러 가겠다며 거리로 나선 사건) 경찰이 막고 그래싸태. 경찰이. 대책(사고 수습 대책) 잘 못 했고 우왕좌왕하고. 니탓 내탓이지. 우리 정부는 보면 전신에 잘 못 하면 누가 하나 책임진다 카는 사람이 없고 잘 모르면 니탓 내탓이라. 부모들이 간다 카는데 그래 놔두면 될 낀데 지시가 안 있겠나. 지금 부모들이 눈에 비겠나. 요새 아들 하나아니면 둘인데. 경찰도 우예 살아보고 위에서 시키니까 안 그렇겠나. 즈그 밥줄인 게네. 우에 사람들이 잘 못 하니까네 뭐 밑에 사람들이 고생치.

저거 집에 일거리가 작으면 돈 받고 놉하지. 우리는 밭이 있었다. 있어도 한 마실에 있으면 시간 봐가지고 한 번씩 가고 그랬지. 나는 모 숨구는 놉을 많이 했어. 소 가지고 논 가라 노면 숨구기도 더럽거든. 그럴 적에 손으로 많이 숨구고 했지. 그 시절에 하루 일당을 얼매 줬는고 몰라. 한 삼천 원인가 그래 줬던가. 푼돈 버는 거지. 하루 저물도록 해가, 또 이런 한 마실에서는 놉 하면 어둡도록 해줘야 된다.

여기도 마찬가지라. 경찰이 민간인들 다부 보호하고 해야 되는데 한전 앞잡이 맨키로 한다. 모두 있는 사람 봐주는 거지. 높은 사람은 살기 좋고. 뭐, 없는 사람하고 못한 사람은 살기 어렵지. 우리 눈으로 봐도 많이 뭐 보이지. 즈그도 법 지키야 되는데 만들어 놔 놓고도 저거도 안 지키니. 그래도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거지. 나라가 이 지경이니까네 안타깝지 뭐.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보기도 그렇다 아닙니까. 저기(텔레비전) 나오는 사람 모두 못 믿으니 우째 되노. 정치를 잘했던 적이 있었나 한 번이라도.

경찰보다는 한전이 나쁘지. 여기 한 마을에 단체도 잘 되고, 한전 때문에 등이 져서 그렇지 이 마을 모두 양반 마을이라 카고 참 좋은 동네인데 저것(송전탑) 때문에 이렇게 돼 안타깝지. 너무너무 평화로웠는데 안타깝다니까. 예전에는 당연히 마을 사람들끼리 품앗이도 하고 그랬다. 양파 같은 거 조금씩 심어도, 그 식구 우리 집에 오고 심고, 그렇게 품앗이해서 캘 때도 그 식구 오고 그랬어. 이제 품앗이는 안 되지. 몸도 아프고, 화도 나고. 주민 사이 나빠지는 게 제일 안타깝지요. 몇십 년 회관에 가서 놀고 그랬는데, 그만 등을 지니까 안타깝지 모두.

이제 회관에도 혼자 못 가. 혼자 갈려니 서먹하고. 그래도 행사 있으면 저 아래 사람들(송전탑 반대 주민들) 다 갑니다. 하나둘 가면 서먹하니까요. 노인총회 열리면 노인들 조금씩 모아서. 전에는 맨날 와서 만들어 먹고 점심 해먹고 저녁까지 해먹고 하는데 올해는 마을까지 나가서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네. 밖에 나가서 먹는다 이 말이라. 식당가서. 분위기가 좀 그렇지요.

공사 할 적에는 용역들 오고 할 때는 번쩍 들려 가고 내 체격이 무거워도 둘이 들면 번쩍 들리던데. 앞에 이차연 할매 잡고 있으니 끄집어 내려가고, 김춘화 씨 그런 사람은 애먹었습니다. 지금은 지나가니 이야기를 하지만 속상하지요. 그래 하필 산이 저리 가도 될 텐데 남의 동네 앞에다가. 자기 집 앞에 세우라고 하면 세우겠습니까. 해 되는 것이라고 하니 남의 앞에 세우려고 하지 득 될 것 같으면 자기 동네에 세우겠습니까. 자기네 덕 보려고 하지.

-만약에 한전이 공사를 세게 해서 송전탑이 서면 어떻겠습니까.

못 서게 해야지. 힘 있는데 까지 해서 못 서게 하다가 안 되면 도리 없지만 하는 데 까지는 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때까지 왔고. 이거 한 개만 안 걸리면 밀양하고 다 연결된다고 하니까. 다른 데는 지중화도 많이 해준다는데 여기는 왜 못 해준다고 그러나. 물론 자기들 생각하면 돈은 좀 많이 안 들겠나. 그래도 사람이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첫째 사람이 우선이지. 요새 모두 얼마나 자기 건강 챙기고 옛날에는 먹을 게 없어서 먹는 걸로 그러지만, 요새는 모두 건강 챙기고 먹는 것도 좋은 것 찾아 먹으려고 하는데 안 그렇습니까.

힘들다고 울면 뭐하나요. 그래 울면 내 맘만 더 안 아픕니까. 자꾸 마음을 크게 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송전탑은 다르지. 건강에도 안 좋고 동네 앞이니 전답도 팔리지도 안 하고. 또 나는 많이 안 살 거니 뭐 그렇지만 퇴직하고 애들이 또 들어와서 살아야 될 거 아닙니까. 나중을 생각하는 거지요.

송전탑이 서니 마니 할 때부터 마실 사람들 다 갈라졌어. 송전탑 오는 거 누가 좋아하노. 반대하면 벌금을 많이 먹여서 지 못 갚으면 손자까지 갚아야 된다 카대. 한전이 와가 그 지랄병을 하대요. 한전이 말마다 거짓말이고. 지랄병이야. 우리가 뭐 잘못한 게 있노. 사람을 때리 지깄나 도둑질을 했나. 우리 재산 우리가 지킬라 카는데. 내캉 친하던 할머니도 송전탑으로 갈라졌어. 보면 인사는 하지만 서먹하고 이제 파이지 뭐. 이 마실이 참 인심 좋고 단합 잘 되고 이랬는데 마실이 송전탑 저거 때메로 영 조졌다. 속상한 기야 뭐 말로 어떻게 다 하겠노.

공사 어떻게든 마무리된다고 이제 뭐 하고 싶은 거 있겠습니까. 동네만 화합하면 되겠지만 옛날만큼은 안 되겠지 겉으로는 뭐 오냐 이래 해도. 사람이라는 게 안 그렇겠습니까. 너무 뭐․․․(힘들었으니.) 이 동네가 단체도 잘 되고 화합도 잘 되고 했었는데 이간을 다 시켜놨으니 그것도 안타깝고. 여기는 송전탑 공사가 끝이 나도 안 아물어진다.